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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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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

입력
2009.08.1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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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 국민적 쾌유 기원에도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어제 서거했다. 충격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석 달도 안 되어 현대사의 거목을 잃게 된 국민들은 또 다시 비통에 잠기게 됐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나라의 큰 인물을 잇따라 떠나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과 상실감이 크다. 삼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부인 이희호 여사 등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표한다.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한마디로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낸 인동초의 삶이었다. 영광과 박수의 한 켠에는 좌절과 가혹한 비판도 함께 자리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을 슬픔 속에 떠나 보내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과보다는 공이 훨씬 빛난다.

민주화ㆍ남북 화해에 크게 기여한 거목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유일한 나라다. 이 눈부신 기적의 성취는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김 전 대통령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투옥과 연금, 납치살해 기도, 사형선고와 망명 등 군부독재 시절 그에게 가해진 혹독한 폭력과 탄압은 민주화 과정의 험난한 역사 그 자체였다. 정치인 DJ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헤치고 민주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15대 대통령 당선은 그가 겪은 고난과 민주화 노력에 대한 보상일 수 있지만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가 물려 받은 나라는 IMF 환란으로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준비된 역량을 총동원하고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6ㆍ25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IT강국의 시대를 열어 제쳤고 국가인권위원회 설치와 여성권익 향상 등 인권과 여권 신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무엇보다도 평가를 받아야 할 업적은 남북화해 및 교류 확대 등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의 진전이다. 분단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6ㆍ15공동선언 채택은 반백년이 넘는 남북 반목과 대결의 시대를 평화와 상호공존의 시대로 물길을 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정상회담에 앞서 북측에 제공된 5억 달러의 성격을 둘러싸고 빚어진 논란으로 빛이 바랜 것은 유감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한반도 평화 증진과 민주화 및 인권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은 노벨 평화상 수상은 국민들의 자부심과 함께 국가의 이미지와 격을 한 단계 높인 경사였다.

과오와 색깔론에 도덕성 상처 입기도

김 전 대통령의 인생과 정치 역정에는 업적과 공로 못지 않게 과오와 부정적인 그늘도 적지 않았다. 1987년 6ㆍ10항쟁의 결과로 찾아온 군사정권 종식 기회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군사정권을 5년이나 연장시킨 것은 중대한 과오였다.

이들 두 전직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등 이른바 3김씨의 경쟁과 협력은 민주화를 향해 한국정치를 이끌어간 힘이기도 했지만 극복해야 할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지탄 받기도 했다. 대통령 재임 당시 아들들과 친인척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자신과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큰 상처가 났다. 이런 뼈아픈 과오와 그림자는 김 전 대통령의 업적 및 영광과 함께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통령은 극심한 지역감정의 피해자였으나 그의 막강한 정치적 영향은 출신지역인 호남의 강고한 지지에 힘 입은 바 컸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 자신을 탄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사업을 지원하는 등 관용과 화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화합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평생 사상과 이념을 의심 받아온 김 전 대통령은 색깔론 등 왜곡과 편견에 시달렸다. 그에 대해 지역적ㆍ이념적으로 극명하게 호오(好惡)와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여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한 꺼풀 벗기고 볼 때 그는 쉼 없이 공부하는 정치인이었으며,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꾀한 실용주의자였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정치적 덕목이다. 퇴임 후 고관절 장애와 고령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3번씩 혈액 투석을 받아가면서 국내외를 넘나들며 정력적으로 활동을 펼친 것은 질병과 장애로 신체가 불편한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주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투병의 불꽃을 태우고 있을 때 평생의 정치라이벌로 경쟁과 불화를 거듭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그에게 가혹한 탄압을 가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찾아와 화해를 선언하고 문병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위기와 독재' 발언으로 불편한 관계였던 이명박 대통령도 병실을 찾아 간절하게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이 밖에도 정치적 견해와 이념에 관계 없이 수많은 각계 인永湧?문병 대열에 참여했다.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풍토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뭉클한 장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고통스러운 투병의 마지막 나날을 화해와 용서, 통합의 숭고한 의식의 장으로 내어준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은 병석에 눕기 전에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꿈과 가치가 흔들리고 부정 당하는 것에 강한 분노를 나타낸 바 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통합,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를 통한 통일의 달성은 당연히 남겨진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우리 모두의 가치임에 틀림없다. 김 전 대통령의 쾌유 기원 문병이 큰 행렬을 이룬 것은 이념과 정서에 관계 없이 이 같은 가치를 평가하고 공감한 결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남은 이들이 이어받아야 할 DJ의 유지

다행히도 김 전 대통령이 크게 우려했던 사태들이 점차 호전되는 과정에 있다.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던 남북 및 북미관계가 대화와 협상 재개의 국면으로 전환될 조짐이고, 미디어법 강행통과로 극한 대립했던 여야 간에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문병정치를 계기로 화합의 기운이 일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계기를 살려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만 김 전 대통령도 마음 편히 영면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는 우리 현대사의 한 장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그의 서거에는 이미 퇴색한 3김정치식 정치행태와 강고한 지역주의로부터 우리 정치와 국민이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긍정적 정치유산의 바탕 위에 국민화합과 민주주의, 인권, 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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