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느끼한 미소를 흘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결혼식 두 달을 앞두고 자신이 차버린 여자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어 허둥대다 벽에 머리를 찧는 모습에선 그의 열성 팬들이 당혹감을 느낄 듯하다.
슬쩍 구긴 얼굴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소지섭이 한ㆍ중 합작영화 '소피의 연애매뉴얼'(20일 개봉)로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다. "이렇게 풀어진 연기는 정말 오랜만"이라는 그에게 영화 속 부드러운 남자 제프 역은 아직 낯설어 보인다. 그러나 말 짧기로 소문난 그가 "영화 어떠셨어요?"라며 예전보다 늘어난 말수를 보여줄 땐 변신이 감지되기도 했다.
'소피의 연애매뉴얼'은 월드스타 장쯔이(章子怡)와 대만의 인기가수 허룬동(何潤東), 대륙의 새별로 떠오른 판빙빙(范氷氷) 등 중국어권 스타들이 4각 사랑의 한 축을 각각 맡은 영화.
알록달록한 이미지가 인상적이고, 장쯔이의 왈가닥 연기가 눈길을 끄는 이 영화에서 소지섭은 옛 약혼녀 역할의 장쯔이와 판빙빙 사이를 오가며 중국어 연기를 한다. 그는 "촬영 일주일 전부터 연기보다 대사에 온 신경이 쏠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피의 연애매뉴얼' 출연이 "아시아권에서 입지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 작품이 끝나면 영어든 일본어든 중국어든 외국어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익근무 시절 일본 여성팬들을 마포구청으로 몰리게 했던 그의 인기는 중국에서도 이어졌다. "팬들이 제가 묵는 호텔 앞에 죽치고 앉아있기 일쑤였고, 저보다 스케줄을 더 잘 알고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가끔 팬들 차량 뒤를 쫓아가면 저도 처음 가보는 촬영현장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1996년 한 의류업체 광고모델로 연예계에 들어선 지 올해로 13년. 서른둘의 나이에서도 이젠 연륜이 조금씩 묻어나는 그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늘어나는 주름이 개성있어 보이는 배우가 되고 싶어 보톡스 주사를 맞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중국에까지 퍼진 '소간지'(스타일이 좋다는 뜻)라는 별명이 주는 부담감도 많이 덜어졌다. "예전엔 밖에 나갔다가 옷 갈아입으려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아무래도 저보다는 제 스타일리스트가 힘들죠. 무슨 옷을 입혀도 팬들에게 욕을 얻어먹으니까요."
그는 "이병헌과 장동건, 전지현 등 국내 스타들의 잇단 해외행을 따스한 시선으로 봐달라"고도 말했다.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으니 처음부터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 힘들잖아요. 보다 나은 도약을 위해 발판을 마련한다 생각하고 지나친 질타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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