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열리는 중국의 상하이국제영화제. 1993년 첫 막을 올렸음에도 올해로 12회가 됐을 정도로 초창기에는 부침을 겪었으나 최근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의 대표 영화제로 발돋움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곧잘 추켜세워지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비해 한 수 낮은 것으로 국내 영화팬들은 얕잡아 보지만 그 저력이 만만치 않다.
2009년 상하이영화제 심사위원장은 대니 보일 감독.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8개 부문을 수상한, 영국의 명장이다.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손에 쥔 할리 베리가 레드카펫을 밟으며 개막식 분위기를 띄웠다. 한물간 듯한 해외 감독과 배우조차 모시지 못해 쩔쩔매는 국내 영화제들은 그저 부러워할 일이다.
상하이영화제는 13억 인구라는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부상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상영된 외화는 불과 44편. 중국은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외화 수입과 상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세계 영화계는 그 좁은 문을 뚫기 위해 중국 영화의 관문, 상하이영화제를 두드리고 있다. 영화제에서도 중국의 슈퍼파워가 발휘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중국처럼 거대한 시장을 지니지 못한, '국제'라는 형용사를 붙이고도 국제적 명성을 얻기엔 갈 길이 먼 국내 다수 영화제들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13일 개막해 18일 끝나는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특성화라는 생존법을 제시한다.
'휴양지 영화제'를 표방한 제천음악영화제는 지난해 연인원 12만명이 찾았다. 첫발을 디딘 2005년(5만명)보다 7만명이나 늘었다. 올해 유료 관객 수도 지난해의 2배 이상은 될 것으로 영화제측은 예상하고 있다.
청풍호반을 흐르는 선율에 더위를 씻고, 다채로운 음악영화를 만나고 싶어하는 피서객들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엄태영 제천시장은 "더 이상 영화제를 키울 생각은 없고 내실을 다지겠다"고 말한다. "덩치만 키우면 제천을 찾는 관객들이 불편을 겪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산이 15억원에 불과한 제천음악영화제는 극장 음향시설의 낙후 등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 음악 공연이 펼쳐지는 청풍호반과 주 상영관의 동떨어진 위치도 관객들의 원성을 살 만하다. 그러나 큰 욕심 내지 않고,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에서 '국제'영화제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비친다. 영화제도 돈으로만 만들어지진 않는다.
제천에서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