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ㆍ정창 옮김/예담 발행ㆍ396쪽ㆍ1만2,000원
스페인 작가 트리아스 데 베스(42ㆍ사진)의 <소리 수집가> 는 저주받은 재능을 타고난 한 천재적 성악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다. 그 비극이란 '어떤 이성이든 유혹할 수 있으나, 그 이성을 사랑할 수 없는 자의 비극',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한 몸에 소유하고 있는 자의 비극'이다. 소리>
19세기 독일을 무대로 전개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테너 루트비히. 루트비히는 한번 들은 소리는 모두 몸에 저장할 수 있는 절대 음감을 타고났다. 모차르트, 베버, 쉴러 등의 아무리 어려운 아리아라도 한번만 들으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은 그를 당대 최고의 성악가로 발돋움하게 한다.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처럼 그의 노랫소리를 들은 모든 여성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지만, 그의 매혹적 재능은 그러나 치명적 유혹의 다른 이름이다. 그와 사랑을 나누는 여성은 예외없이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것. 신은 그에게 천상의 목소리를 주었으나, 그의 정낭에 여성을 죽음에 이르는 저주를 걸었다.
작가는 살인 아니면 사랑을 택해야 하는 저주 앞에서 200명이 넘는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인공의 광기,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려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을 섬뜩할 정도로 긴박하게 그려낸다. 자신이 호위하던 왕의 부인과 사랑에 빠진 기사를 소재로 한 중세 유럽의 오랜 연애담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프를 얻은 결말의 반전도 놀랍다.
작품 곳곳에 인용되고 있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타과 이졸데'의 감미로운 가사, "나의 소리는 손가락이 되어 그녀의 머릿결을 매만지고, 벌거벗은 몸이 되어 그녀의 나신을 껴안고,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보드라운 펜이 되어 그녀의 몸을 탐닉했다"와 같은 관능적인 묘사 역시 독자를 매료시킨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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