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다우어 지음ㆍ최은석 옮김/민음사 발행ㆍ860쪽ㆍ4만5,000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이후 6년 동안 미군정의 지배를 받는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중심으로 한 점령군 사령부는 일본을 군주 같은 태도로 지배하려 했고 도전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같은 태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국제정세적인 이유로 또 실무적인 이유로 미군정이 일본의 기존 체제와 타협하면서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세적인 이유는 본격적인 냉전 시대의 도래였다. 미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일본을 자기 편으로 묶어야 했으며 그 때문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 할 히로히토 천황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천황은 이제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났다. 실무적인 이유로는 언어 장벽이 가장 컸다. 미군정은 언어의 어려움 때문에 슬슬 일본의 구 관료사회에 의지했는데 이는 이중 관료화를 초래했다.
존 다우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역사학과 교수의 <패배를 껴안고> 가 다루는 것은 2차대전 이후 일본의 사회상이다. 전쟁 직후 일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일본인은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살핀다. 책, 잡지, 만화, 포스터, 공문서, 노래가사 등 온갖 자료가 동원된다. 패배를>
당시 일본 사회를 결정한 중요 변수가 바로 미군정이다. 전쟁의 승자 미국은 패자 일본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고 군국주의적인 문화를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미군정은 그 목표를 이루는 대신 천황을 옹호하는 등 일본의 기존 사회와 타협한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최대 희생자인 아시아인의 존재를 무시한 것이었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지역 갈등을 유발하는 일본의 전쟁 책임 불감증의 바탕이 됐다.
종전 직후 일본 사회를 결정한 중요 변수 중 하나가 미군정인 것은 틀림 없지만 그것 말고도 당시 일본은 이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최고위층은 공익에 눈감은 채 군수물자를 착복했고, 대중은 돈에 눈먼 그들을 비웃었다. 좌익은 예상을 넘어서는 세력을 확보했다. 개인의 취향이 공중도덕을 대신했다. 연예인들이 대중문화의 주인공으로 태어났다. 구세주를 팔아먹는 종교가 늘었다. 어수선하다고도, 활력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시대였다.
<패배를 껴안고> 에는 전후 일본의 이 같은 사회상이 가득 나열돼 있다. 하지만 그 방대한 사회 현상을 꿰는 기준, 관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역사적 평가를 시도하기보다 당시 나타난 현상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그렇더라도 당시 일본을,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의 시선으로 본 것은 틀림없다. 일본 사회를 우호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언뜻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패배를>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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