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런 G 필러 지음ㆍ김요한 옮김/프로네시스 발행ㆍ480쪽ㆍ2만3,000원
다윈은 DNA의 존재가 밝혀지기 훨씬 이전에 '변이를 수반한 유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의 관찰에 바탕을 둔 것인데, 집단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생물이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이 혁명적 생각은 현대 생물학의 지배적 이론으로 자리잡아 진화론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척추와 말초신경 수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에런 G 필러는 진화에 대해 훨씬 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허리 세운 유인원> 은 그 아이디어를 담은 것으로, 저자는 진화가 돌연변이에 의해 '단 한 세대 만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이 책에서 주장한다. 허리>
저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50여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한 척추뼈를 접하고부터다. 2,100만년 전 유인원의 척추인데, 이것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기존 진화론에 따르면 직립 유인원이 침팬지와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600만년 전의 일이므로, 이 뼈의 존재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동물의 체절(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분절 단위) 형성에 관여하는 혹스 유전자에서 수수께끼를 풀 단초를 찾는다. 현대 분자생물학은 혹스 유전자에서 발생한 작은 변화가 유기체 전체의 형질 변환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저자는 이것을 하나의 돌연변이가 염색체적인 종(種) 분화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인간의 허리뼈 또한 이 유전자가 일으킨 변화의 일종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이 책에 따르면 2,100만년 전의 수수께끼 직립동물로부터 오늘날의 인류와 유인원이 갈라져 나온 것이다. 어느 관점이 옳은 것인지 단정짓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이 진화론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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