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친서민' 행보가 빨라지면서, 이동통신사들을 향한 휴대폰 요금인하 압박도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소비자원과 손잡고 이통사들을 향해 요금인하의 포문을 연데 이어, 그 동안 주무부처로서 '팔이 안으로 굽었던' 방송통신위원회마저 이젠 요금인하추진 계획을 공식화하고 말았다. 이통사들은 사실상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 셈이다.
달라진 방통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1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등을 통해 우리나라 통신 요금이 외국 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모든 국민들이 값싸고 질 좋은 방송ㆍ통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들은 최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이 메릴린치 보고서를 인용, "음성통화 시간이 한국과 비슷한 15개국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가장 비싸다"고 주장했을 때만해도 방통위는 이통사들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1일 한국의 휴대폰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취지의 OECD 자료가 공개되고 최 위원장 마저 직접 요금인하를 언급하자, 이통사들로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그 동안 업계 자율원칙을 고수하며 요금 문제에 관한 한 한걸음 물러나 있던 방통위가, 종전 입장을 바꿔 요금인하를 위한 직ㆍ간접적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중인 친서민 정책 기조의 불똥이 결국 이통통신요금 쪽으로 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압박강도는 앞으로 보다 커질 전망. 방통위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함께 휴대폰요금 인하 방안모색을 위해 공개 세미나를 오는 20일 개최하는 등 요금을 끌어내리기 위한 본격적인 분위기조성과 이동통신사들을 향한 우회적 압박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인하 쟁점은
휴대폰 요금인하와 관련된 최대 쟁점은 기본료와 통화료, 가입비다. 기본료의 경우 이동통신사가 1만2,000원(LG텔레콤 1만1,900원)을 받고 있는데, 너무 비싸다는 논란이 있다.
통화료(10초당)는 KTF(2009년6월 KT로 통합)는 2000년4월부터, LG텔레콤은 2002년1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 조정없이 18원을 고수하고 있다. 2008년3월이전까지 20원을 부과했던 SK텔레콤은 지난해 3월에서야 비로소 타사와 같은 18원으로 맞췄다.
10년 가까이 요지부동인 가입비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다. 2000년부터 SK텔레콤은 5만5,000원, KT와 LG텔레콤은 각각 3만원씩을 가입자들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은, 결국 기본료 통화료 가입비 등이 과다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의 입장은
최근의 요금인하압박이 '친서민기조'라는 큰 틀에서 이뤄지는 것인 만큼, 이동통신사들은 내놓고 반발하지 못한 채 속만 끓이고 있다. 하지만 OECD등의 통계는 결합상품 할인 등 휴대폰요금 감면요인이 반영되지 않고 있는 만큼, 이를 근거로 요금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익을 내야 차세대 통신망 투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익을 낸다고 해서 요금을 낮추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론이나 전례 없이 강경한 정부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동통신사들이 요금인하 없이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 것이란 게 업계 주변의 관측이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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