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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대 상처를 치유한 작가 한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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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대 상처를 치유한 작가 한운사

입력
2009.08.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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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별세한 한운사(1923~2009) 선생은 대중매체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바탕으로 20여년 넘게 60여 편에 이르는 방송극을 집필하면서 한국 방송극의 초석을 다졌던 작가였다. 회고록 <구름의 역사> (2006)에 따르면 그는 해방 전까지 한국문학 작품은 물론, 그 어떤 극예술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었던 비운의 식민지 지식인이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폭력적 현실에 대한 참담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당대 새로운 대중매체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라디오를 선택한 그는 1948년 '날아간 새'라는 방송소설로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957년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라디오드라마 '이 생명 다하도록'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청취자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1960~70년대 한국 방송극의 형성기를 이끌었던 한운사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남과 북'으로 상징되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소재로 한 것, 둘째 '현해탄은 알고 있다'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소재로 한 것, 셋째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다룬 '잘 돼 갑니다'처럼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현안을 소재로 한 작품세계가 그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도 한운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이 생명 다 하도록''아낌없이 주련다''빨간 마후라''남과 북''서울이여 안녕' 등은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한국영화사의 대표작들이다. 자신의 방송극과 영화의 주제가 가사를 직접 썼던 그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남과 북'의 주제가로 1980년대 초반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주제곡으로 사용돼 천만 이산가족의 심금을 울린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대한민국 공군의 주제가로 불릴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노래 '빨간 마후라', 새마을운동의 주제가 '잘 살아 보세'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대중매체를 종횡무진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래도 작가 한운사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방송극이었다. 방송극의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감각을 통해 상상의 무대를 겅험한 그가 당시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세계로 향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의 문제였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송극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당대 대중의 상처를 치유했다.

이처럼 한운사는 대중예술을 바라보는 순수예술의 편견과 맞서면서 오랜 세월 동안 매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20세기 한국 대중예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시대를 앞서간 작가였다. 투병 생활 중에서도 '막장드라마'를 걱정하실 정도로 방송극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작가 한운사의 열정과 사명감을 되새기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ㆍ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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