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내일 모레가 광복절이지. 이맘때만 되면 꼭 사람들이 찾아오지."
13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한 임대아파트 입구. 땡볕을 겨우 피할 만한 나무그늘 아래서 동네 노인들이 한담을 나누고 있다가 애국지사 집을 찾는 질문에 대답 대신 핀잔을 준다.
차 한대도 빠져나가기 힘든 골목길을 돌고 돌아 찾아간 곳은 독립 유공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수원보훈원 보훈복지타운. 전체 450가구 가운데 독립 유공자 가구는 24곳이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유족이고 생존 애국지사는 최고령인 김병환(94)옹을 비롯해, 김은석(90) 황갑수(88) 이영수(85) 강백(83) 옹과 오희옥(83) 여사 등 6명 뿐이다.
황 옹의 집에 들어섰다. 8평 남짓한 집은 방 1칸과 화장실이 전부였다. 1930년대 일본군 을 탈출해 김좌진 장군 소속 부대에 들어가 활동했던 황 옹은 여전히 안중근 의사의 유묵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를 걸어놓고 있다. 3개월 전부터 기력이 쇠약해져 누워 만 있는 황 옹의 말없는 눈빛에는 후손들에 대한 서운함이 짙게 배 있었다.
옆 동에 살고 있는 이영수 광복회 수원시지회장은 그런대로 정정한 편이었다. 이 회장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광복절 때만 되면 반짝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면서 "생존 지사들도 몇 명 남지 않은 만큼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만주 신흥 무관학교 교관이자 서로군정서 별동대장 오광선(1896~967) 장군의 차녀인 오희옥 여사도 "친일파 후손들이 선조들의 땅을 찾겠다고 소송까지 내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그나마 여기 모여 살게 된 이후 동지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노년을 보내니 마음은 편하다"고 위안거리를 찾았다.
하지만 워낙 고령이다 보니 대부분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김병환 옹과 김은석 옹은 각각 당뇨 합병증에 따른 다리 절단 수술과 폐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한 유족은 "첫 입주 때 애국지사가 몇 분이나 들어와 살았는지 보훈원에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면서 "후손들이 고귀한 희생을 너무 쉽게 잊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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