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유래했음직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본다. 한복을 입은 어머니들이 삿대질을 하며 양복 차림의 한 중년 남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그렇게 기세등등할 수가 없다. 약이 오른 어머니들이 무리를 지어 동분서주했을 테니 가뜩이나 긴 치마가 짧은 보폭에 휘감기고 펴지면서 출정식의 깃발 소리를 냈을 것 같다. 때는 1964년이었다. 어린이들도 입시 경쟁에 치여 과외다 밤샘공부다 힘들 때였다.
목표는 일류 중학교 입학. '엿기름 대신 넣어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전기 중학 입시문제 중 한 문제가 진짜 '문제'였다. 자연과목답게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어머니들이 부르르 들고 일어났다. 보기 중의 '무즙'도 정답이라는 것이다. 한두 문제로 당락이 결정되곤 했으니 간과할 일이 아니었다. 무즙으로 엿을 곤 솥단지를 들고 시위장에 나와 엿인지 아닌지 먹어보라며 큰소리를 치는 어머니들도 있었다.
결국 6개월 만에 경기중학을 비롯한 전기 중학교에서 낙방한 38명의 학생들에게 입학 허가가 떨어졌다. 전분분해효소인 디아스타제는 무즙뿐 아니라 마즙에도 들어 있다. 과식을 한 뒤에 먹던 무 한 조각만 떠올려보았더라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입시 과열과 학문을 생활과 동떨어진 이론으로만 생각하던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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