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로 여름휴가를 간 덕분에 동강댐이 세워졌을 자리를 배로 지났다. 물은 맑고 주변 경치는 어찌나 좋던지 댐이 세워졌으면 어쩔 뻔 했을까 다시 생각했다. 경치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흐르는 동강은 댐보다 경제성도 높았다. 영월에는 래프팅 업체만 60개가 성업중이라는데, 한 곳에서 다섯 명만 고용을 한다고 해도 300명이다.
인구 4만 도시에서 300명 고용은 적은 것이 아니다. 관광객이 뿌리는 돈은 덤이다. 돈을 퍼붓지도, 시멘트를 바르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강을 지킴으로써 누리는 이 가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요즘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는 '동강댐'이 될법한 공영주차장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에 아주머니가 나섰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김병애(62)씨는 여고생 때 처음 본 부암동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꿈을 2005년에야 이뤘다. 시유지 13평을 합쳐서 55평인 단독주택 앞마당에는 꽃이 가득하다.
이 주택가에 구청이 공영주차장을 넣기로 했다는 계획을 올 봄에 들었다. 구청측은 주민여론조사와 공청회까지 마쳤다지만 그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웃들 모두가 그랬다. 그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주민들의 반대서명을 받고 있다. 다행히 부암동을 아끼는 외부인사들까지 동참하기 시작했다.
주택가 차 부르는 공영주차장
이 동네를 지나는 버스가 3개 노선이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카페가 늘어나면서 굳이 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골목이 불법주차한 차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공영주차장을 세우기로 했다는 게 종로구청 말이다. 공영주차장을 세우면 불법주차가 줄어들까? 길이 넓어지면 차가 더 많아지듯 공영주차장이 생겨나면 차를 몰고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고요한 주택가가 위락단지처럼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면 부암동의 매력은 사라지고, 구경꾼으로부터 버려진 순간 공영주차장만 헌데처럼 남을 것이다. 더구나 주차장을 세우려는 곳은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단독주택지이다. 이곳에는 50년은 더 쓸만한 튼튼한 집이 한 채 있다. 마당에는 은행나무 향나무가 우거져있다. 주차장을 만들려면 멀쩡한 집을 부수고 나무들을 베어내고 6미터 도로까지 골목에 내야 한다. 차라리 이 집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녹지를 살리는 것이 동네도, 구청도 사는 길이다.
철따라 꽃심어줘야 하는 광화문 광장
고려대학교 맞은 편,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에서는 이 단독주택가를 아파트로 만들려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이 7년째 계속되고 있다. 재개발 구역 지정을 요청하려면 지역주민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데, 한 때 이 규정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이 때를 틈타 신청한 재개발구역지정요청서가 조례가 바뀐 후에도 효력을 잃지 않아서 재개발 문제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쪽은 고려대생을 상대로 하숙을 치거나 원룸을 제공하는 서민들이다.
걔중에는 터무니없는 재개발 아파트 분양가 때문에 이전동네에서 단독주택을 잃고 이곳으로 이사온 이도 있다. 올들어 고려대 학생들이 이곳을 대학촌답게 살려야 한다는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재개발 반대주민들은 힘을 얻고 있다. 이곳 역시 고층아파트로 꾸미기보다는 대학촌답게 개발한다면 장래가치는 훨씬 높을 것이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으며 영국은 물경 12억 달러를 들여 런던에 직경 350미터의 밀레니엄돔을 만들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 골치거리가 되었다. 반면 프랑스는 자오선을 따라 나무를 심는 '푸른 자오선'을 만들었다. 이 나무들은 지금도 잘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시멘트로 덮은 후 그 위에 화강암을 깔고 다시 그 위에 얕게 흙을 얹어서 철마다 꽃을 새로 심어줘야 하는, 소모적인 꽃밭으로 광화문광장을 만든 서울시에서 이런 말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분명 지켜야 가치가 커가는 것들이 있다. 주민들이 미래가치를 지키려고 애쓰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재를 뿌린다면 답답한 일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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