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강원 횡성 우천농공산업단지 내 동해산업 공장 앞 마당. 갈색 물체가 마당 곳곳에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인천 웅진 남포리 도로 정비','전남 해남 땅끝 관광지 달맞이 산책로','경북 칠곡 호국의 다리 경관', '충북 증평 삼기 저수지 생태공원'등 행선지는 전국 방방곡곡. 회사 관계자는 "하루에 33톤을 찍어 내고 있지만 물건이 달린다"며 "11개 라인으로 모자라 최근 3개 라인을 증설했다"고 말했다.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는 갈색 물체는 다름 아닌 친환경 합성 목재. 그것도 톱밥(목분)과 볏짚(왕겨)을 합성수지와 섞어 만들었다. 정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진행하는 관급 공사의 70%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 심효섭(54) 대표는 "10년 전부터 환경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며 "화학 물질이 아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끈질기게 연구 개발을 한 덕분"이라고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1990년 대 초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를 세운 운영하던 심 대표는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폐업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는 기술 개발과 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친환경 합성 목재'개발로 눈을 돌린다.
심 대표는 이후 합성수지(무기질)와 결합이 가능한 짝(유기질) 찾기에 나선다. 옥수수 대, 솔잎, 각종 풀 나무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1년 가까이 시행착오가 이어졌고 심 대표는 왕겨가 목재 제품보다 내방부성, 내구성, 내충성을 높이고 뒤틀림을 막아 제품 수명을 반영구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아냈다. 이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연구비 1억8,000만원을 지원 받아 연구를 진행했고 2003년 '목분 합성 인조목 제조방법'으로 특허를 받고 합성목재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또 다른 벽이 있었다. 영세한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이유로 지자체 관련 부서 담당자들로부터 냉대와 무시를 당했다. 심 대표는 "발로 뛰며 공무원들을 설득했지만 큰 기업들의 막대한 영업력과 물량 공세에 밀려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1년. 2004년 어렵사리 대한주택공사 협력 업체에 뽑히면서 납품을 시작했다.
심 대표는 2005년 기존 제품보다 내구성은 높고 싼 친환경 합성 목재 '클릭우드'를 선보였다. 그는 "충격에 견디는 힘, 복원하는 능력은 천연 목재보다 뛰어나다"며 "화학 물질을 쓰는 외국의 합성 목재 성형 기술보다 월등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그 해 행정자치부의 '신지식인'에 뽑혔다.
2007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환경 보호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고 등산로, 산책로 등에 쓰이던 방부목(썩지 않은 나무)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되면서 합성 목재가 대체 품목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 2006년 12억 원에 불과했던 합성목재 시장 규모는 2007년 160억원, 2008년 900억 원으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일찍이 기술력을 인정 받았고 쓰레기나 다름 없던 왕겨와 목분을 재료로 쓰니 값도 기존 제품보다 훨씬 싸다는 장점까지 지녀 동해산업 제품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조달청이 우수 제품, 3자 단가 지정 제품으로 선정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89억 원 매출을 기록했던 동해산업은 올해 상반기만 195억원 어치 합성 목재를 팔았다.
심 대표는 최근 국내 업체 2곳과 기술 이전 협약을 맺었다. 그는 "생산 설비를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 다른 업체에서 생산해서 물건을 팔기로 했다"며"중국 회사와도 기술 이전을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왕겨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심 대표는 "강원은 물론 전국 평야 지역에서 왕겨를 다 긁어 모아 쓰지만 가공 공장의 생산 능력이 모자라 최근 설비를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는 그러면서도 LED(발광다이오드)와 합성목재를 결합한 조경재, 내외장재 개발 등 또 다른 히트 상품을 위해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는 "또 다른 왕겨를 찾기 위해 지금도 산과 들을 들락날락 한다"면서 환히 웃었다.
횡성=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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