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한 농장 대표가 피땀 흘려 모은 재산 300억원을 12일 KAIST에 쾌척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기 용인시 서전농원 김병호(68) 회장.
김 회장은 이날 가족과 함께 KAIST를 방문, 용인시에 있는 임야와 논, 밭 9만4,500여㎡(시가 300억원 상당)를 기부하는 약정서에 서명했다. 지난해 8월 류근철(84) 한의학 박사가 578억원을 기증한지 1년 만에 KAIST에 또다시 거액의 기부가 이뤄진 것이다.
김 회장은 KAIST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 그는 "우리나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데 KAIST에 기부하면 그 뜻이 이뤄질 것 같았다"며 "KAIST가 최고의 과학기술로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기부금을 IT분야 등 대학발전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고, 내년 완공 예정인 센터를 김 회장 부부의 이름을 따 '김병호ㆍ김삼열 IT융합센터'로 명명하겠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회장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17세에 돈 76원을 들고 상경했다. 식당 종업원과 운수회사 직원 등을 전전하면서 돈을 모으고 동생들을 교육시키느라 정작 자신은 공부의 때를 놓쳤다.
1988년 용인에 밤나무 농장인 서전농원을 세우기까지 그는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고생을 해야 했다. 서전농원은 16만5,000㎡ 규모의 체험농장으로 5,200여 그루의 밤나무 단지와 사슴, 오리 등 동물사육장을 갖추고 있다.
그는 "남들이 다 사먹는 흔한 사카린 음료수조차 사먹지 않고 절약하며 재산을 모았다"며 "그러나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처럼 어렵게 번 돈인 만큼 뜻 깊게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앞서 2005년엔 고향 부안에 10억원을 기부해 '나누미 근농 장학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기부 결정에는 부인 김삼열(60)씨와 아들 김세윤(36)씨의 적극적인 지지가 뒷받침됐다. 지난달 27일 KAIST에 기부의사를 처음 밝힌 이메일을 보낸 것도 부인이었다. 김회장 부부와 아들은 시신기증운동에도 함께 동참했다.
이날 '기부 거장' 3인의 만남이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정문술(71) KAIST 이사장(전 미래산업 대표)은 김 회장에게 "멋진 일을 하셨다"고 박수를 보냈다.
김 회장은 "선배님의 길을 따라왔을 뿐"이라고 화답했다. 또 578억원을 기부했던 류 박사는 "전에는 여기저기 아팠는데 기부한 뒤로는 아픈 곳이 사라졌다"며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 김 회장에게 덕담을 건넸다.
서 총장은 "세 분은 한국의 기부 역사를 쓰신 분"이라며 "KAIST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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