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73) 전 부총리가 1978년 출간했던 저서 <저 낮은 곳을 향하여> 를 손봐 다시 내놨다. <한국 교회여, 낮은 곳에 서라> (포이에마 발행). 상당량을 덜어낸 뒤 고쳐 썼고, 원고지 70매 남짓 되는 프롤로그도 새로 썼는데 어조와 비유가 가차없이 신랄하다. 한국> 저>
"요즘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기엔 너무 을씨년스럽게 어두컴컴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기엔 안에서부터 너무 역겨운 냄새가 번져 나오는 듯합니다." 한 전 부총리를 만나 이 책의 초판과 개정판이 놓인 시대적 맥락과 사회적 수요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 초판이 민중신학적 가치의 공급과 확산이라는 적극적 의미가 강했다면, 개정판은 교회권력에 대한 비판이 부각된 듯합니다.
"시대가 변했죠. 정치적 민주화가 진척됐고, 시민ㆍ사회단체가 크게 성장했어요. '줄씨알'(Net-Rootㆍ정보와 지식의 자유로운 교류를 통해 성장한 사회의 새로운 주체세력을 일컫는 그의 조어)들의 등장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교회권력은 더 타락했어요. 교회가 양극화하면서 비대해진 교회세력은 미국 부시 정권의 기독교우파처럼 현실 권력과 깊이 결탁하고 있어요. 개정판의 어조가 강한 것은 더 강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1970년대 기독교는 권력의 변방에 있었지만 지금은 초대형 교회들이 한국적 네오콘의 중심에 서서 사학입법을 위해 십자가를 들고, 반북ㆍ반핵 시위에 신도들을 동원하고 있어요. 이 정부 들어 감지되는 정치적 역류도 우려할 만한 상황입니다. 제가 다니는 작은 교회(새길교회)에서 신도들과 통일문제 세미나를 하는데 지난 십수년간 못 보던 사람들이 와서는 뭔가를 적다 가더라고요. 군사정권 시절의 민간 모니터링 시스템이 다시 가동되는 것 같아요."
그의 교회권력 비판은, 초판에서나 개정판에서나, 세속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과 겹쳐 있다. 갈릴리 예수와 동시대 민중들이 겪은 3중 권력(로마제국, 헤롯의 대리권력, 종교권력)의 억압과 대규모 개발ㆍ토목정책으로 이뤄진 화려한 '팍스 로마나'의 베일을 들출 때,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화려한 교회의 첨탑만은 아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 회귀, 닫힌 정치와 민주주의의 후퇴, 토건경제 경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고, 보수언론 권력을 비판했다.
책 프롤로그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권력과 결탁할 때 권력은 더욱 오만해진다"고 할 때도 그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 둘 모두를 싸잡는다. 그 오만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곳은 예수의 자리, '저 낮은 곳'이라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그리고 예수의 '우아한 패배'를 이야기한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용서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모습, 그것이 바로 부당한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우아한 패배죠. 하지만 요즘 교회는 어떻습니까. 기독교 신자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이 '승리'예요. 기도할 때 습관처럼 하는 말이 '오늘도 승리하게 하소서'입니다.
종교의 참 승리는 우아한 패배와 함께 성취됩니다. 나의 행복을 갈구하는 저급한 쾌락의 원리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의 불익을 감수하는 용기를 달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한 전 부총리는 YS정부의 초대 통일부총리, DJ정부 교육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여러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그 시절 각계 인사들과의 대담ㆍ인터뷰를 모아 남북관계와 민주개혁 등 주제별로 정리하고 각주와 해석을 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9월께 책으로 묶여나올 예정이다.
"'당대비평' 문부식 주간과 4시간 가량 토론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한국식 파시즘의 가능성'을 언급한 게 있어요. 전 YSㆍDJ정권을 안팎에서 겪었잖아요. 그 정부들이 실패하면 한국정치가 엄청난 퇴행을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그 우울한 경고가 요즘 현실화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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