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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냐 맥주냐… 두 술도사 '맞잔'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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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냐 맥주냐… 두 술도사 '맞잔' 뜨다

입력
2009.08.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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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는 여름 술의 대명사다. 뜨거웠던 하루가 시나브로 삭는 초저녁, 목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청량감을 당할 자 누군가. 그런데 이 점에서 막걸리도 맥주에 뒤지지 않는다.

모내기철 농부의 갈증을 확 풀어 주는 게 막걸리 본연의 임무 아니었던가. 여기다 한술 더 떠 새로운 세대들의 입맛에 맞춘 제품까지 속속 등장하면서 특급 호텔과 골프장에서도 팔리는 술이 됐다.

한 여름 땡볕에 맥주와 막걸리가 맞붙는다 치자. 시장 규모로 치면 맥주는 3조원, 막걸리는 기껏해야 2,000억원대로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이지만 다윗에게는 치명적 한 방이 있다. 지금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현해탄 너머 일본에까지 불고 있는 막걸리 열풍의 근원은 술이지만 맛과 건강 모두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맥주는 한국인이 갈증 해소를 위해 가장 즐기는 술임에 틀림없다.

맥주와 막걸리의 한판 전쟁을 위해 자칭타칭 술 박사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비어 헌터(beer hunter) 이기중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와 막걸리 전도사 신우창 국순당연구소 부소장이다. 두 사람이 말하는 맥주와 막걸리의 '다르고도 같은' 매력을 들어 보자.

■ 맥주는 파티주, 막걸리는 유전자주

이기중 교수= "맥주는 오작교예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맥주 만한 게 없죠. 와인이 개인적 사교의 술이라면 맥주는 파티의 술입니다. 십여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서로 잔을 부딪히는 맛은 맥주가 최곱니다."

신우창 부소장= "맥주와 막걸리는 TPO가 상당히 겹쳐요. 같은 저도주고 운동 후 시원하게 마시면 갈증이 확 풀리죠. TV를 보며 혼자 가볍게 한잔 할 때도 제 격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혼자 소주는 못 마셔도 막걸리는 마실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막걸리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된 술 아닙니까. 누구나 친숙하게 느낍니다."

이 교수= "나도 생막걸리는 즐깁니다. 어제 밤에도 한잔했는데 시원하고 감칠 맛이 좋더라고요. 이거 얼굴이 부어서 사진이 잘 나올라나."

신 부소장= "하하, 막걸리는 원래 생막걸리가 기본이죠.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 있어 몸에도 이롭습니다. 일반 막걸리는 유통 기간을 늘려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살균 처리하는 겁니다. 병맥주도 결국은 생맥주 유통 기한을 늘리기 위해 살균해서 병입한 것 아닙니까."

■ 1980년대 초 갈린 맥주와 막걸리 운명

이 교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맥주가 대중화한 건 80년께였어요. 대학 2학년 때였는데 당시 오비 생맥주 전문점이 처음 생겼어요. 당시만 해도 학생들은 소주나 동동주 마시는 게 고작이었고 돈 좀 있으면 전기 통닭구이가 나오는 크라운 맥주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생맥주 전문점이 생기면서 안주도 손바닥에 올려 놓고 퍽 치면 봉투가 뜯어지는 봉지김과 마른안주 등을 제공했죠. 당시 돈으로 500㏄ 생맥주 한 잔에 500원이었고 봉지김이 100원이었으니 호주머니가 얇은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 인기 최고였습니다."

신 부소장= "그때가 막걸리는 내리막을 걷는 시기였습니다. 75년이 막걸리 최전성기였는데 전체 주류 시장의 60~70%가 막걸리였고 전국적으로 140만㎘가 생산됐어요. 지금이 20만㎘쯤 되니 소비량이 7배 준 셈입니다."

이 교수= "서구화의 영향도 컸을 겁니다. 생맥주 전문점들은 유럽의 대규모 펍처럼 내부를 꾸미고 종업원들도 세련된 보타이를 매게 하는 등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했거든요."

신 부소장= "하기야 당시만 해도 막걸리집은 시장통의 지저분한 곳인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또 전성기 시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자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조기 숙성시키느라 카바이트 같은 화학물질을 공공연히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어요. 막걸리를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는 등의 부작용을 낳으면서 점점 외면당하는 계기가 됐어요."

■ 복지부동 맥주, 전화위복 막걸리

이 교수= "그런데도 요즘 막걸리가 인기를 얻는 것 보면 신기합니다. 얼마 전엔 일본 도쿄에 여행갔다가 단골 주점에 들렀는데 막걸리집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상당히 고급스러워서 깜짝 놀랐어요."

신 부소장= "확실히 문화가 바뀌고 있어요. 요즘 막걸리 바람은 단순히 옛것에 대한 향수 차원이 아닙니다. 지저분한 데서 막 먹는 술에서 최근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서 먹는 술로 이미지가 바뀌었죠. 막걸리 칵테일, 캔 막걸리 등이 나오면서 젊은 층들이 다시 찾기 시작하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국순당만 해도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배 이상 성장했어요. 물론 이런 막걸리 붐 뒤에는 화학 첨가제를 없애고, 탄산을 섞어 청량감을 높이며, 최고의 맛을 내는 탄산압을 유지하는 특허기술을 개발하는 등 제조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어요."

이 교수= "막걸리 붐?보면서 안타까운 건 국내 맥주 제조사들도 분발해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입니다. 하이트와 오비가 시장을 양분하면서 제품 개발은 뒷전이고 마케팅에만 돈을 바른다는 느낌이에요."

신 부소장= "굉장히 운 좋은 회사들이라는 건 맞아요. 막걸리만 해도 전국에 700개 제조업체가 있는데 맥주는 오로지 2곳이니까요."

이 교수=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앞으로 수입 맥주 값이 떨어질 겁니다. 국내 맥주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결국 맛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국내 맥주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쓰면,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어요.

들이켰을 때 첫 맛이 톡 쏘면서 '하이'(Hi) 하면 뒷맛은 쌉쌀하게 잡아 주며 '바이'(Bie)하고 가야 하는 데 그게 없습니다. 그냥 맛이 휙 날라가 싱겁죠. 미국에서 출판된 여행 가이드북에는 한국의 맥주를 '워터리'(waterlyㆍ물처럼 밍밍한)라고 표현한 것도 있는데 그만큼 캐릭터가 없다는 뜻이죠."

신 부소장= "쓴 맛 단위를 보면 국내 맥주가 외국 맥주에 비해 10분의 1 수준입니다. 크라운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넘어오면서 쓴 맛이 급격히 줄었는데 그게 일반화한 것 같아요. 전통주도 보통 단맛과 신맛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국인의 입맛이 쓴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쓴 맛을 내는 홉(hops)을 덜 쓰니 원가 절감 차원인가 싶기도 하지만…."

■ 맥주 & 막걸리, 오감 만족 음주 문화를 찾아라

이 교수= "막걸리든, 맥주든 음주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좋은데 문화도 함께 올라갔으면 싶어요. 해외에 나가 보면 맥주를 종류와 무관하게 같은 잔에 따라 마시는 게 얼마나 무식한 행위인지 알 수 있잖아요.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하이네켄이나 호가든 같은 맥주들도 다 전용잔이 있어요.

수입사가 잔은 수입하지 않는 것이 문제죠. 와인의 종류에 따라 가장 잘 음미할 수 있는 와인잔을 분류하는 것처럼 맥주도 각각의 특성에 따라 혀의 어느 부분에 먼저 닿을 것인가, 한잔을 마시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최적의 맛을 유지해 주는가 등에 따라 전용잔이 다 다르죠.

독일의 쾰슈맥주 전용잔은 용량이 200㎖에 불과합니다. 하이트 전용잔, 카스 전용잔, 오비 전용잔이 없다는 건 그것들이 이름만 다를 뿐 맛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웅변해 줍니다."

신 부소장= "국순당에서도 생막걸리 전용잔을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 막걸리는 사발에 마셔야 한다는 선입관이 있는데 이를 깰 수 있는 작업이 됐으면 싶어요. 저는 집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배가 봉긋한 유리잔에 따라 마십니다. 맛과 색을 다 즐길 수 있으니까요."

이 교수= "막걸리집이 분위기를 카페 같이 바꾸고 파전이나 묵무침 같은 무거운 음식 대신, 나물 위주의 깔끔한 안주 세트를 개발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맥주와 막걸리는 형제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곡주고, 발효주이며, 혼자서도 여럿이도 격의 없이 즐길 수 있어요. 최근의 막걸리 붐을 반면 교사 삼아 국내 맥주 제조사들이 개성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주 문화를 끌어올리는 노력도 했으면 싶습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 막걸리 vs 맥주 맛있게 먹는 법

◎신우창 국순당연구소 부소장

막걸리 부활을 위해 200여종의 막걸리를 시음하며 전국을 누빈 막걸리통.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로 기존 생막걸리의 최대 단점인 짧은 유통 기한 문제를 최고의 맛을 내는 탄산압 개발을 통해 해결한 주역이다.

◎이기중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

대학교수이자 여행 컨설턴트이며 새로운 맥주를 맛보기 위해 전 세계 90여개국을 여행한 소문난 맥주통. 맥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최근 <비어 헌터 이기중의 유럽 맥주 견문록> (즐거운 상상 출간)을 펴냈다.

▲ 막걸리 맛있게 먹는 법

막걸리를 가라앉혀서 마시지 말라

막걸리의 뿌연 고형물을 가라앉혀 말간 액체만 마시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막걸리의 본질이자 장점을 고스란히 버리는 행위. 막걸리의 장점인 살아 있는 효모, 유산균, 비소화성 식이섬유 등은 모두 이 고형물에 있으니 휘휘 저어서 같이 마시는 것이 좋다.

막걸리 색이 흴수록 좋다는 건 오해

색상의 차이는 발효를 위해 넣는 누룩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의 차이다. 일본식 누룩인 쌀누룩을 사용한 막걸리는 흰색(서울장수막걸리가 대표적)에 가깝고, 전통 누룩인 밀누룩을 쓴 막걸리는 노리끼리한 색(국순당 생막걸리가 대표적)을 띤다. 밀누룩은 깊고 풍부한 맛, 일본식 누룩은 깔끔하고 단순한 맛이 특징이다.

▲ 맥주 맛있게 먹는 법

꽉꽉 눌러 담지 말라

맥주는 술과 거품의 비율이 7 대 3일 때 가장 이상적이다. 거품은 맥주의 탄산가스가 새 나가는 것을 막아 주고 공기의 접촉을 차단해 신선도를 유지해 준다.

피처는 절대 시키지 말라

다소 값이 싸다는 이유로, 또는 서로 따라 주는 즐거움을 위해 피처를 시키면 공기와의 접촉면이 넓어져 거품이 줄고 그만큼 빨리 산화해 맥주 맛을 떨어뜨린다.

회식 자리에선 잔을 가장 나중에 받아라

마지막 사람까지 잔이 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먼저 부은 맥주는 산화해 맛이 떨어지게 된다. 윗사람의 권위를 버리고 가장 늦게 잔을 받는 게 맛있는 맥주를 즐기는 비법.

■ 맥주와 막걸리, 그 오해와 진실

▲ 막걸리는 요쿠르트보다 수십 배 유산균이 많다

-No. 750㎖짜리 군순당 생막걸리 한 통에는 ㎖당 약 10의 7승 마리의 유산균이 들어 있다. 이는 딱 75㎖짜리 요쿠르트 한 통에 포함된 양. 주류에 유산균이 들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다.

▲ 막걸리는 서민주다

-No. 생산 원가만 따지면 막걸리는 고급주에 속한다. 맥주 값의 70%가 세금인 반면, 막걸리 값의 5%만이 세금으로 나간다. 원가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뜻.

▲ 맥주는 담석증에 좋다

-No. 물이나 맥주를 많이 마시면 담석이 빠져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맥주는 담석의 주요 원인 물질인 칼슘을 함유하고 있어 담석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배출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축적시킬 위험이 있다.

▲ 막걸리 맛은 강서와 강동이 다르다

-서울장수막걸리의 경우는 Yes. 장수막걸리는 서울의 5개 탁주 제조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브랜드이다. 공장이 다른 만큼 예민한 미각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 물은 힘들어도 맥주는 수천㏄를 마실 수 있다

-개인차가 있지만 Yes. 물은 위장에서 흡수되는 데 반해 맥주는 위장을 지나 소장 대장까지 가야 겨우 흡수된다. 따라서 물은 두 컵만 마셔도 배 부르지만 맥주는 쉽게 배가 부르지 않으며 맥주에 들어 있는 탄산 성분이 소화를 도와 음주량을 늘린다.

▲ 맥주를 마시면 배가 나온다

-No. 맥주는 사과 주스나 콜라보다도 열량이 낮고 맥주 한잔(200㏄)은 소주 한잔(50㏄)과 열량이 비슷하다. 맥주를 마시면 배가 나온다는 것은 스낵이나 치킨류 등 안주 탓이지 술 탓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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