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36일 동안 북한에 억류됐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의 석방 과정은 의외로 싱거웠다.
13일 오후 5시10분 개성공단 내 북한 출입국사업부, 북측 관계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뒤이어 생사여부 조차 알 수 없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북측 관계자는 한쪽 짜리 문서를 꺼내 "유씨가 공화국 체제를 비판했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이하 합의서) 제10조에 따라 유씨를 추방한다"는 짤막한 글을 읽고 이내 사라졌다. 곧바로 아침부터 초조하게 기다리던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은 유씨의 신병을 인도받았다. 채 1분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남북간 최대 현안 중의 하나였던 유씨 문제가 마무리됐다.
유씨 석방의 법적 근거는 북측이 밝힌 대로 2004년 체결된 합의서 제10조다. 북한은 6월 19일 제2차 개성공단 협상에서 유씨 문제를 이 조항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이후 석방 가능성이 점쳐졌다.
이 조항은 ▦지구 내 법질서 위반시 북측은 이를 중지시킨 뒤 조사하고 ▦위반내용을 남측에 통보하며 ▦위반 정도에 따라 경고 또는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남측 지역으로 추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해 유씨는 추방된 것이다. 유씨가 범칙금을 낼 가능성도 있다.
또한 방북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선물을 안겨주려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의도도 석방의 또 다른 배경이다. 현 회장의 평양행 성사 과정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10일 방북한 현 회장은 방북 전 북측과 유씨를 8ㆍ15 이전에 석방한다는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 따른 미국인 여기자 2명 석방도 유씨 문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유씨 사건에는 유난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유씨가 지난 3월 30일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북측 여성의 탈북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북한에 체포되자 남측은 증거 제시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유씨를 대남 카드로 이용했다.
6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유씨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은 유씨의 억류 장소와 건강 상태조차 확인해주지 않으면서 유씨 가족과 남측 국민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결국 현 회장이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현 회장은 방북 체류 기간을 두 차례 연장하면서 끈질긴 협상을 벌였고, 끝내 유씨 석방을 이끌어냈다.
일각에서는 석방과정에서 '대가' 가 오고 갔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북측이 물밑에서 몸값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대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제한했던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부분 허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 남북간의 경색된 분위기를 호전시켰다고 평가했다.
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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