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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계의 '영원한 작가' 한운사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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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계의 '영원한 작가' 한운사씨 별세

입력
2009.08.1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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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ㆍ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대중가요 작사가로 활동하며 국내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한운사(韓雲史) 전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이 11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23년 충북 괴산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일본 주오(中央)대를 거쳐 서울대 불문과 재학 중이던 1948년 KBS 라디오 드라마 '어찌하리까'를 집필하며 방송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세계명작순례'(1949), '이 생명 다하도록'(1957),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0), '아낌 없이 주련다'(1962)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은 그는 1964년 국내 최초의 TV 일일드라마 '눈이 내리는데'를 집필했고 이어 '딸의 혼담'(1964), '오늘의 왕'(1966), '서울이여 안녕'(1971) 등 장편 드라마만 100여 편을 발표했다.

충무로에서도 고인은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1960년 '아낌없이 주련다'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 후 '빨간 마후라'(1964)와 '남과 북'(1965), '족보'(1975) 등을 써서 대중을 울리고 웃겼다.

가요 '강릉아가씨'(1962), '빨간마후라'(1965), '세월의 보초'(1976) 등의 가사도 그가 만들었다. 장편소설 '대야망',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도 펴내 소설가로서도 이름을 알렸다.

작가활동 이외에도 고인은 다채로운 이력으로 문화계에 화제를 뿌렸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에는 유엔군 환영위원회 장교구락부 지배인을 맡았고 이듬해엔 강원도 육민관 중ㆍ고교의 교감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1954년에는 한국일보 초대 문화부장으로 발탁돼 당시 대학생이던 이어령의 등단 글 '우상의 파괴'를 발굴해 게재하는 등 활약했고, 고 백상 장기영 한국일보 창간발행인의 일대기 <끝없는 전진> (1992), <한국적 최강ceo 장기영- 뛰면서 생각하라> (2006)를 집필하기도 했다.

1957년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첫 선임된 후 다섯 차례 이사장을 지냈으며, 한국펜클럽 대표,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역임했다. '남과 북'(1965)으로 제3회 청룡영화상과 제4회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나루터 3대'(1978)로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극본상을 받았다. 2002년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으며 지난해에는 제9회 방송인상 방송공로상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이연순씨와 만원(한도시건축 대표) 도원(락킹햄투자 대표) 중원(재일 사업가) 상원(호원대 교수)씨 등 4남이 있다.

장례는 방송작가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 14일 오전 10시, 장지는 강원 원주시 문막읍 충효공원. (02)3010-2230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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