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초 김모(18)군을 비롯한 10대 남학생 4명은 친구로 지내는 김모(17)양의 서울 성북구 집에 모였다. 맞벌이 회사원인 부모를 둔 김양의 집은 방과 후 이들이 자주 모여 어울리는 '아지트'였다.
이날은 마침 김양의 친구인 박모(17)양도 와 있었다. 김군은 박양의 앞머리를 다듬어주겠다며 가위를 들었다. 10여분간 가위질을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김군과 친구들의 장난기가 걷잡을 수 없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김양 집에서 박양을 다시 만난 이들은 박양에게 전동 이발기를 들이댔다. 별 모양과 임금 왕(王)자 모양을 남기고 박양 머리를 박박 깎으면서 연신 키득거렸다. 짖궂은 장난은 성추행으로 이어졌다. 저항하는 박양의 팔다리를 붙잡은 뒤 치마와 블라우스를 들추고 알몸을 만졌다. 그리고 수성 사인펜으로 맨몸에 음란한 그림을 그리면서 "씻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박양은 결국 삭발한 채 가발을 마련해 쓰고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김군과 친구들의 엽기적 행각은 그치지 않았다. 버스 안이나 길거리에서 박양의 가발을 벗겼다. 가발에 침을 뱉고 머리를 툭툭 치며 놀렸다. 상황을 뻔히 보고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만행을 장난처럼 여기는 10대들의 철없는 행각은 두 달 동안 이어졌지만 박양은 보복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 4월 이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뒤 탐문 수사를 벌여 지난 8일 김군 일행 4명을 모두 붙잡았다. 이들은 "재미있어 장난을 쳤을 뿐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별다른 죄책감을 보이지 않아 담당 경찰관을 당혹스럽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 학생 모두 건전한 가정 환경을 갖춘 중산층 출신이었고, 그 동안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성추행과 폭력 행위가 장기간 이어진 만큼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 김군을 구속하고 황모(18)군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박민식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