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교실을 옮겨가면서 과목별로 수업을 듣는 '교과교실제'가 내년 3월 새 학기부터 선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교과교실제 시범 운영 학교 84곳을 선정했다.
교과교실제는 외국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학생들이 사물함에 짐을 두고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방식이 국내에도 도입되는 것이다. 제대로 정착될 경우 교실 수업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어 벌써부터 교육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공교육 혁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학생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수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게 사실이지만, 우열반 변질 우려 등의 부작용도 제기되고 있다. 교과교실제의 주요 특징을 알아본다.
■ 과목별 맞춤형 이동수업
과목별로 전용교실을 두고 학생들이 수업 시간표에 따라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방식이 교과교실제다. 현재 중ㆍ고교 수업 방식은 학생들이 한 교실에 머물고 각 과목별 담당 교사들이 시간표에 따라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하는 형태지만, 교과교실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이동하며 수업을 듣게 된다.
대학처럼 학생 개개인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이동하게 돼 같은 반 학생이라도 수업을 듣는 교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반 또는 담임 개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지금처럼 자신이 속한 교실로 일단 등교를 했다가 담임교사로부터 조회를 받고 수업이 시작되면 해당 교과의 교실로 옮겨 수업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시행 초기인 만큼 각 학교의 상황에 맞춰 전면 도입형과 부분 도입형으로 나눠 교과교실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일단 시범운영 결과를 지켜본 뒤 전면도입 학교 확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번에 선정된 학교들도 교과교실제를 대부분의 과목에 적용하는 선진형 6곳과 수학ㆍ영어ㆍ과학 등 일부 과목에만 적용하는 과목 중점형 25곳, 기존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하는 수준별 수업형 53곳 등으로 나눠졌다.
이와는 별도로 2007년부터 교과교실제 연구학교로 지정된 한가람고와 동원중, 한강중, 공항중, 언북중, 선유중, 연서중 등 서울 지역 9개교는 다양한 연구과제 등을 수행하는 교과교실제 모범학교로 활용된다.
■ 갈길 먼 교과교실제
교과교실제의 가장 큰 장점은 교과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수업이 가능해지고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교는 학생들의 선택권도 그만큼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어교실은 수업에 맞춰 각종 시청각 교육자재를 상시 구비하는 등 특성에 맞는 교실을 만들 수 있다.
한가람고 수학 교실의 경우 여러 학생들이 동시에 나와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이동식 칠판이 여럿 설치돼 있고 천장에 각종 도형이 걸려있는 등 각 교실마다 특색있게 꾸며놓았다.
교사는 전용교실에 상주하면서 수업준비를 할 수 있어 그만큼 수업에 대해 연구할 시간이 많아지고 전문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교과교실제에 맞는 학교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교과별로 전용교실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해 학생들이 하루 종일 머무는 교실이 없어지는 만큼 학생 휴게실, 도서실, 사물함 등의 시설 확충이 필수적이다.
한가람고도 1997년 교과교실제를 실시했지만 당시 학교 건물 구조 등의 문제로 2년 만에 중단했다가 학교 공사 후 다시 교과교실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교원, 강사, 행정보조인력 등이 부족한 학교에 대한 지원과 교과교실 수업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 개발도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교과교실제 도입으로 수준별 이동수업이 가능하게 돼 결국 우열반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상위권 30%→ A교사, 중위권 30%→ B교사, 하위권 40%→ C 교사'식으로 학생들이 과목별 수준별 수업에 참여할 게 분명해 사실상 우열반이 운영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교과교실제를 시범 도입할 일부 중ㆍ고교는 주요 과목 교실 선택권을 학생 스스로에게 맡기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하고 싶은 과목 수업은 수준과 관계없이 듣게 하되, 역부족이라고 느낄 경우 다른 수준의 교실을 스스로 찾게 하는 방식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생 수준 판정 방법 및 성적 배분 비율은 학교 자율에 맡길 방침"이라며 "교과교실제가 성공을 거두려면 학생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교과 선택권을 확대하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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