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짙은 먹구름이 낀 채 비가 가늘게 흩뿌리는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 새벽 출어에 나섰다 돌아온 어선 200여척이 정박된 항구에는 배를 정돈하는 어민들만 간간히 눈에 띄었다.
"뭐? 명태? 없어 없어. 씨가 마른 지가 언젠데…. 명태 조업 포기한 지 오래 됐어. 아, 없는 걸 어떻게 잡아. 영양가 없는 질문하지마, 바쁜데." 한 어민에게 명태 얘기를 꺼내자 되레 발끈하며 그물을 챙겨 들고, 홱 돌아서서 가 버렸다.
인근 파라솔 아래서 아내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윤광천(57)씨가 명태 얘기를 듣고 불쑥 끼어들었다. "사흘 전 한 60cm 되는 명태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렸길래 잡았지. 근데 명태가 삐쩍 말라빠진 채 죽어 있어 그냥 저녁에 찌개 끓여 먹었어. 명태가 귀해서 한 두 마리 잡으면 먹어야지." 윤씨는 아내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20여년 전 고기잡이를 그만 두고 수협 냉장공장에서 일하는 김창수(55)씨도 "그 때만 해도 겨울에는 어판장이 명태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명태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 없어. 이제는 희귀종이지."
강원 고성군 대진항과 함께 명태잡이로 풍어를 이뤘던 이곳 어민들에게 명태는 이제 옛 얘기가 됐다. 그 추억 속의 명태가 동해에 돌아와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사랑하는 짝들과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는"(가곡 '명태' 중에서) 날이 다시 올지 모른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가 최근 명태 종묘 생산을 통해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 자원 회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명태를 포획한 뒤 채란과 수정을 거쳐 치어를 만드는 과정인 종묘 생산 기술이 국내에는 아직 없다. '명태 살리기'에 나선 연구소는 다음달 명태 종묘 생산에 성공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대학 연구소에 연구원을 파견하고, 명태 전문연구기관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팀로연구소 전문가들을 초청해 종묘 생산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연구소는 특히 치어 생산의 첫 걸음인 어미 명태 확보를 위해서 명태 회유 시기인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명태를 산 채로 잡아오는 어민들에게 시세의 10배를 쳐주기로 했다. 연구소를 지난달 28일 고성군 고성수협에서 어민들과 함께 명태 살리기 방안을 논의하는 사랑방 좌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어민들은 "정말 명태가 돌아오는 거냐"고 반신반의하면서도 명태의 향수에 젖어들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명태잡이를 했다는 이성과(54)씨는 "새벽에 나가 그물을 뿌리고 오후에 들어오는데 많이 잡을 때는 하루에 200상자(1상자 20마리)까지도 잡았다.
그때는 명태 덕분에 어민들 수입이 짭짤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씨는 "지금은 명태 대신 오징어가 잡히긴 하지만, 겨울철에 명태까지 다시 잡히면 우리야 좋고 말고지"라며 웃었다.
하지만 주문진항에서 만난 어민 윤광천씨는 "러시아에서 다 잡아들이고, 수온대가 안 맞으면 안 될 텐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나가던 노신철(61)씨가 옆에 앉더니 "에이, 아니야. 겨울철이 되면 수온대가 맞는단 말야. 대구처럼 된다니까. 대구도 경상도에서 많이 방류해 지금처럼 됐잖아"라며 대거리했다.
그는 귀족 어종이었던 대구가 꾸준한 인공 수정란 방류 사업 덕에 어획량이 크게 늘어 흔한 생선이 된 예를 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연구소측은 온난화로 동해 표층의 수온이 상승했지만 저층 수온은 오히려 내려갔기 때문에 해저 300m 안팎에 사는 심해 어종인 명태가 서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연구소는 일본과 러시아의 기술이 보태지면 명태 종묘의 대량생산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해의 명태 어획량은 1980년대 연간 10만톤에 달했지만 1990년대 들어 1만톤 수준으로 급감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명태는 북태평양 베링해에서 원양 어선이 잡아온 것이거나 일본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어민들은 명태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로 남획을 꼽는다. 35년째 고기를 잡고 있는 김부영(62) 주문진 어촌계장은 "요즘은 장비가 좋아져 소나(sonarㆍ수중에 음파를 쏘아 어군을 탐지하는 장비)로 멀리 벗어나 있는 어군까지 포착해 저인망으로 심해에 있는 고기까지 다 잡는다"며 "명태도 러시아와 홋카이도 등에서 심해까지 싹쓸이 했기 때문에 회유 시기인 겨울철에 동해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과씨는 "법적으로 치어의 기준을 몇 cm로 정해 노가리(명태의 새끼)를 잡지 않았다면 명태가 고갈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김종빈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연구소 연구관은 "한 때 명태가 주소득원이었던 지역 어민들이 명태 자원회복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다"며 "이르면 내년 중에 명태 치어를 명태 주산지인 고성 해역에 방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창배 기자
강릉=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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