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0일 투병 중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이날 풍경은 숙명의 정치 라이벌이자 협력자였던 양 김씨의 화해로 해석됐다.
대권고지 앞에서 갈라선 뒤 감정의 골이 깊이 파였던 두 사람의 관계에 비춰 보면 YS의 문병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YS는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는 말로 '양김의 화해'를 선언했다.
YS는 이날 오전 10시5분쯤 김기수 비서실장 등 수행원과 함께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나와는 가장 오랜 경쟁 관계이고 협력관계다. 세계에서 유례 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이철 병원장의 안내로 20층 병실로 올라간 YS는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나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에 이 여사는 "대통령이 오늘 조금 좋아졌다. 지금 주무시고 계신데 깨어나서 김영삼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한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병실에서 15분간 머문 YS는 DJ를 대면하지 못한 채 병원을 떠나면서 기자들이 양김의 화해 여부를 묻자, 준비했다는 듯이 선뜻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전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두 분의) 화해 문제가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날 병문안 성사를 위해 YS측과 동교동계의 물밑 접촉이 지난 주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DJ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자 YS측이 이날 아침에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한다. 1987년 대선에서 야권이 분열된 뒤 완전히 갈라선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DJ가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자 YS가 "그 입을 닫아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와 관련, 5년 전부터 자서전 집필잡업을 해왔던 DJ는 곧 출간할 자서전에서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반대세력끼리 정치보복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DJ 자서전은 출생부터 1997년 대선전까지와 집권이후 시기로 나뉘어져 있고, 원고지 5,000장 분량의 방대한 저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하루 종일 여야 정치인의 병문안 발길도 줄을 이었다. 오전엔 박희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차례로 병실을 찾았다. 오후엔 김형오 국회의장,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이 병원을 방문했다. 전날에 이어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설훈 전 의원 등 옛 동교동계 인사들이 병원에서 비상 대기했다.
■ 의료진 미음 공급 재개
한편 폐렴으로 29일째 입원 중인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수치가 불안정한 상태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날 유동식(미음) 공급이 재개됐다. DJ측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음식물을 공급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오전에 의료진한테서 받았다"며 "인공호흡 의존도도 약간 낮아진 상태라는 설명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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