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행보를 펼치며 표방한 '중도강화론'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뉴라이트 계열에서는 "중도의 실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인 정책을 성급하게 내놓고 있다"며 포퓰리즘을 비판한다. '일식 집에서 비빔밥을 내놓은 격'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반면 민생 챙기기의 수혜 계층인 서민들은 성이 차지 않는 표정이고, 정부 보수우익 성향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진정성을 의심한다.
'친서민 정책' 진정성 보여야
정부가 제시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고민을 해소해 줄 매력적인 정책이다. 이 대통령은 "이제 대학 등록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사실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재정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인기 영합주의라는 비난과, 비싼 등록금이 문제의 근원임을 외면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반발이 엇갈린다.
그러나 비싼 등록금을 정부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또 새로운 학자금 대출제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마냥 생색내기라고 헐뜯을 일도 아니다. 그런 정책 아이템을 구상한 것만도 가상하지 않은가.
정권의 성향을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나 좌와 우를 양쪽으로 좀 더 팽팽히 잡아당기면 나오는 극좌와 극우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영향력이 약하다. 모든 정권이나 정당, 정치세력은 대개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게 마련이다.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중간에서 왼쪽에 자리 했다면, 문민정부와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오른 쪽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그 곳이 중간에서 얼마나 왼쪽인지, 얼마나 오른쪽인지는 정부 정책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역대 정부 가운데 순전한 좌파 진보정권은 없었고, 정책 수준에서는 이른바 '골통보수'극우정권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은 대부분 중간에서 얼마간 오른쪽 또는 약간 왼쪽에 자리 잡았다. 또 모두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흔히 포퓰리즘으로 흐르곤 했다. 결국 역대 정부는 대부분 중도, 퓨전, 비빔밥이었다. 다만 좌우로 조금씩 편차를 보였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정치의 우익보수 선회를 상징했지만, 그 실체는 뉴라이트란 명칭이 시사하듯 절충형이다. 다시 말해 뭔가 다른 우익이었고 좀 모호한 보수이다. '강부자'와 '고소영' 정부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그 기조를 굽히지 않던 이명박 정부가 민생캠페인을 벌이며 '중도실용'을 내세운 것은 의외였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뒤늦게나마 어떤 이념과 정책도 정치에 성공하지 못하면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별반 새로울 바 없는 그런 교훈을 몰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절감하지 못했던 것일 게다. 그러다 촛불과 조문 정국을 거치며 민심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나마 감을 잡은 것이다. 정권 출범 초부터' 정치 기피''여의도 혐오'에 치우친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이제 국민을 상대로 본격적 대통령 정치를 시작한 셈이다.
국민 신뢰 쌓아야 성공
대통령은 인기에 연연해서도 포퓰리즘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치에 성공해야 한다. 중도실용은 퇴행이라기보다는 진화론적 적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 진정성 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틈만 나면 시비하던 재산헌납 약속을 지켰고, 거듭 되풀이한 인사 실책도 큰 줄기는 바로잡은 모습이다. 그러니 국민도 이제 좀 지켜 봐줄 만한 시점이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더욱 더 진지하고 부드럽게 민심을 어루만지고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자신의 정치이념과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도 이런 실용적 정치에 성공해야 한다. 그것이 또한 실용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