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나 러스 등 지음·잭 자이프스 엮음·김경숙 옮김사이 발행·284쪽·1만원
고전동화들은 삶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지혜를 전승하는 공동체의 자산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것은 불의하고 부당한 세상에 순응시키려는,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의 투영물이라는 함의를 갖고 있기.
<세상으로 첫 여행을 떠날 때 읽는 동화> 는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여성에 대한 미화, 외적인 미에 대한 숭배, 마법과 기적을 통한 갈등 해결 등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를 은연중에 전파하는 서양 고전동화를 뒤집어보는 패러디 동화집이다. 19세기말 주로 그림형제, 안데르센에 의해 편집되고 만들어진 ‘인어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의 고전동화 13편이 10명의 작가에 의해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쓰여졌다. 세상으로>
가령 ‘신데렐라’의 패러디인 ’달빛왕자’에는 왕자를 만나 신분 상승하는 착하고 희생적인, 그러나 수동적인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왕자도, 마차도, 유리구두도 없다. 계모와 의붓언니들의 구박을 묵묵히 참아내던 주인공 소녀는 죽은 엄마의 도움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며 홀로 설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모녀관계라는 여성적 연대의 가치를 환기시킨다.
‘인어공주’의 패러디인 ‘루살카 혹은 보헤미아 해변’의 주인공은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어라는 자기의 본질을 부정한 여성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인어공주와의 사랑에 눈먼 원작의 왕자와 달리, 결혼 뒤 왕자의 눈에 비친 인어공주 루살카는 ‘차갑고 미끄덩했고, 차가운 날생선만 먹는 그녀의 식습관도 꺼림칙’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루살카의 비극적인 최후는 낭만적인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참 모습을 저버리는 여성들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다.
‘백설공주’의 패러디인 ‘백설이야기’는 계모와 백설공주의 갈등이라는 원작의 대립관계를 민중을 착취하는 지배자와 사회적 정의감을 가진 여성과의 대결구조로 비틀어 놓았다.
고전동화를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새로 읽어내는 시각은 독특하지만, ‘당나귀왕자’ ‘울프랜드’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일부 동화들에 해제가 없는 점은 약간 아쉽다. 원제 ‘Don’t bet on the prince’ (1986)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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