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지음 글항아리 발행·352쪽·1만5,000원
인문학과 영화의 만남은 별스럽지 않다.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을 메스 삼아 현대인의 사고체계를 해부하려 했던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로보예 지젝도, 구조주의를 뛰어넘으려 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도 학문적 성과를 표현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영화를 애용했다. 대중적 매체이면서도 인간 내면을 탐사할 수 있는 영화의 매력적인 존재론적 가치를 인문학이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과 영화의 만남은 곧잘 대중과의 거리감을 유발해 왔다. ‘탈주’와 ‘욕망’ 등 일상을 벗어나 새롭게 정의된 어려운 철학 용어들이 대중의 시선을 차단시켰다.
철학자인 김영민 숙명여대 의사소통센터 교수의 <영화인문학> 은 기존 영화 관련 인문서보다 대중에 가까이 다가서려 한다. 그렇다고 영화 리뷰처럼 만만히 볼 글들로 채워져 있진 않다. 학문적 엄격함과 영화에 대한 개인적 단상을 버무린 글은 간단치 않은 무게감과 통찰력을 함께 제공한다. 영화인문학>
김 교수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종교를 통한 용서라는 나르시시즘의 한 단면을 포착하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는 ‘진리라는 것은 아프고 낯설고 기괴한 것이라는 주제의식’을 찾아낸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에서 ‘사랑과 혈연으로 무장한 가족의 배타적 동일성이 주는 이익은 단기적이며 우연적이고 경험적이라는 사실’도 읽는다.
‘밀양’으로 시작해 요절한 천재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까지 지난 30년 사이의 한국영화 27편을 다뤘다. “‘밀양’은 ‘인디아나 존스’ 따위 영화 30개와 바꿀 수 없는 수작”이라는 식으로 각 영화별 감상을 짧게 정리한 글이 눈길을 잡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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