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이름은 적상(赤裳),
붉은 치마가 은유라면 그 속에 내 사랑하는 여자가 산다네
구중심처에서 울울창창 나무들을 거느리는 내 사랑하는 여자가 산다네
고봉준령 다 품은 적요로움으로 있는 내 여자여
나 다시 태어나면 네 치마 속 고로쇠로 서 있고 싶다
바람 탓이라고, 몸으로 농짓거리 하면서, 내 손바닥으로 슬쩍 네 하초를 더듬고 싶다
내 직립의 일생이 순전히 내 여자를 향한 발기이고 싶다
빳빳한 내 상상을 풍경으로 바꾸느라 온몸이 치마가 되었네 저도 그리 싫지는 않아서 붉게 물들었네
나 다시 태어나면 적상산 고로쇠로 태어나리 病이 깊어 적상을 찾는 이에게 수액을 다 내어주어도 좋겠네
● 아직 여름이 창창하지만 이 시를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고 싶다. 붉은 치마라는 은유 속에 사는 사랑하는 여자. 아주 깊은 산에 사는 내 여자를 노래하는 청년 시인 박진성의 노래다. 얼마나 사랑이 붉어졌으면 '네 치마 속 고로쇠'로 한 남자는 서있고 싶었을까. 어떤 사랑이 마음을 저리도 간절하게 들어 올렸을까.
여름의 진한 초록 속으로 계절이 들어갈 때 서정주 선생님의 어떤 시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그 계절을 생각하게 된다. 지친 초록에서 뿜어나올 지난 계절을 다 받아낸 단풍의 아찔함, 그 붉은 치마를 생각하면,
'적상산 고로쇠'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시인의 마음이 서럽다. 그 활활한 불길 속에 문득 떠오르는 한 여자, 병 깊은 모든 이들의 여자, 그 여자에게 자신의 수액을 다 드리고 싶다는 한 청년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가을이 올 날을 기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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