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우리 화단은 무채색의 단색조 회화가 지배하는 모노크롬 열풍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주창자의 한 사람인 중진 화가 박서보씨는 최근 색을 적극 구사하는 화풍을 선언, 다채로운 삶의 빛깔을 긍정하고 있다. '제15회 창무국제예술제 의정부 2009'의 표제가 바로 그 '폴리크롬(Polychrome)'이다.
7개국, 24개팀(해외 6개팀, 국내 18개팀)이 참가해 '다(多), 색(色), 화(和)'라는 부제 아래 21~30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ㆍ소극장에서 육체 언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 모든 것이 전통의 깃발 아래 펼쳐진다. 눈 높은 사람들도 탐낼 만한 무대가 한둘 아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태평무 이수자로 남성의 역동적 기개를 펼칠 조흥동의 '한량무', 철금 산조의 아취 속에서 한국 전통 춤의 새 가능성을 추구한 윤미라의 '산조 - 저 꽃, 저 물빛',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의 '밀양 북춤' 등에는 전통의 아취가 그윽하다.
승무를 이인무로 변형한 채상묵ㆍ진유림의 '이매방류 쌍승무', 살풀이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이입시켜 단든 김매자의 '한영숙류 살풀이춤 & 지전 살풀이춤' 등은 전통의 재해석이란 문제에 하나의 답으로 등장한다.
그 대극에 현대인의 종잡을 수 없는 일상이 있다. 전미숙무용단의 '약속하시겠습니까?'가 일상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냉소적 무대를 올린다면, 폴란드의 실레지안 댄스씨어터는 그들의 역사에 깃든 비극을 무용으로 치환한 '이웃의 역사'로 답한다.
한국-폴란드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뜻도 깃들어 있다. 조성희와 박해준은 현대인의 고립과 상실을 따스한 유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겨울로 가는 사람들'을, 이정윤과 김주원은 춘향전을 모던 발레로 해석한 '소울 메이트 춘향'을 각각 공연, 이 시대 일상의 문제를 형상화한다.
이번 무대는 현대의 또 다른 일상, 즉 기술 문명이 몸과 길항하는 양상을 무용 어법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호주 잼버드 무용단의 폐막작 '메타 댄스'는 천정에서 드리워진 반투명막에 비치는 영상 이미지와 무용수들의 몸이 교차하는 무대로, 인간의 인지 기능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폴란드 실레지안 댄스씨어터의 '이웃의 역사'는 전설, 미신 등 전통 문화 유산의 현대적 변용이란 문제를 천착한다. 한ㆍ중ㆍ독 남성 안무가전,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 한ㆍ미ㆍ일 여성 안무가전 등은 무용의 지평을 넓힐 계기다.
이번 행사는 문화 하드웨어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예산 확보 등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창무예술원(이사장 김매자), 의정부예술의전당(사장 이진배)의 합의 아래 올해부터 경기 의정부로 무대의 중심을 옮겼다. 그 동안 민간 행사로 이뤄져 오던 이 행사가 예산 확보 등을 위해 처음으로 공동 주최 형식을 취한 것이다.
지역 사회와 사회 운동의 결합에서 새 전기를 이룩할 계기로도 주목 받고 있다. 의정부예술의전당과 아름다운가게가 4일 체결한 '희망 티켓과 함께 하는 뷰티풀 공연 기증 캠페인' 협약에 따라 중고 물품을 기증하면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수익금은 전액 소외 계층의 공연 관람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데, 아름다운가게가 공연장과 협약을 맺고 운동을 펼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병욱 문화전문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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