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 정적 속에 흐린 하늘에서 비만 흩뿌릴 뿐이었다. 노조원들의 농성이 계속됐던 바로 전날까지의 전쟁터와도 같았던 긴장감과 어수선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공장 내부. 파업은 끝났지만, 흔적은 선명했다. 노조원들이 한 때 머물렀던 조립 3,4공장엔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경찰진입을 막기 위해 무거운 기자재와 부품상자들로 2중, 3중 쌓았던 벽도 그대로였다. 한 동안 가동이 멈췄던 조립 라인과 기자재들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청소하는 직원들로 공장내부는 부산했다. 농성 노조원들이 쌓아 놓았던 장애물을 중장비로 치우고 부족한 부품은 없는지, 기계 이상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했다.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다행스런 일이었다. 최상진 쌍용차 기획재무담당 상무는 “도장 공장 시설 파손이 거의 없어 열흘 안에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8월 2,000여대 생산 예정이고 9월부터는 월 평균 4,000여대 정도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농성 노조원들이 끝까지 머물렀던 제 2도장 공장은 경찰의 현장 감식이 끝나지 않아 이번 주말에야 정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쌍용차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만은 않았다. 77일 간의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새 출발을 통한 재기의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앞날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을 것임을 그들도 잘 아는 듯 했다. 직원 차모(가명ㆍ39)씨는 “생산 차질로 손실을 입은 것도 큰 일이지만 무엇보다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게 가장 안타깝다”면서 “공장이 돌아가도 팔 곳이 마땅치 않으면 소용 없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 했다.
사실 이번 77일간의 싸움은 ‘승자 없는 게임’이었다. 사측도 노측도 얻은 것 없는, 모두가 ‘패자’뿐인 싸움이었다. 3,000억원이 넘는 생산 차질액은 그렇다 쳐도, 브랜드가치 손상과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회사의 존속가치가 잠식당했고 이젠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아무리 정리해고자수를 줄이고 고용을 유지한들, 회사의 존립가치가 없어진다면 무슨 소용일까. 공장 인근 식당에서 만난 농성 참여자 장모(가명ㆍ51)씨는 “77일 농성으로 500명이 안 되는 해고자의 일자리를 되찾았지만 따지고 보면 농성 참여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결과”라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성 참여자 양모(가명ㆍ47)씨는 노(勞)-노(勞) 갈등을 걱정했다. “같이 일했던 상관과 부하 직원과 서로 몽둥이를 휘둘렀다고 생각하니 슬프다”면서 “공장으로 돌아가더라도 마음의 상처가 가라앉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깊은 갈등의 골을 안고 과연 회생의 바퀴를 다시 돌릴 수 있을는지.
회사측은 어떻게든 회사를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조의 점거파업이 길어지면서 회사를 정리할까(청산형 회생계획안 제출)도 생각했지만, 이젠 회사를 살리는 쪽(갱생형 회생계획안)으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냉랭하다. 쌍용차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파업은 끝났지만 칼자루를 쥔 법원, 생명줄(자금)을 쥔 채권은행 모두 쌍용차의 미래에 대해선 반신반의하고 있다. 파업의 혹독한 대가인 셈이다.
직원들은 이날 하루 종일 공장 곳곳을 청소했다. 하지만 아무리 쓸고 닦은들, 회사가 근로자가 지역사회가 그리고 우리경제가 입은 77일의 상처는 쉽게 치유될 것 같지 않았다. 다른 기업 노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과연 내년 이맘때도 회사와 내가 여기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큰 아픔을 겪었으니 최선을 다 해야죠”라는 한 직원의 말에서 희망과 절망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평택=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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