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만쿠조 등 지음·장택수 등 옮김생각의 나무 발행·492쪽·4만7,000원
노르웨이의 오래된 어촌마을 카벨보그는 연이은 화재와 경기침체를 겪은 뒤 주차장으로 전락했던 광장을 새롭게 설계하기 시작했다. 바이킹 시대 선박과 바다를 모티프로 한 이 광장은 이 지역의 역사를 다시 불러냈고, 시민들이 모여드는 도시의 중심지가 되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늘 광장이 있다. 유럽 지중해 문화권에서 발생한 뒤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품어왔던 광장은 근대화 시기, 무섭게 들어서는 도로와 건물에 밀려 그 힘을 잃었다. 그런데 광장이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역사가 쌓인 공동체의 자산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요즘 광장의 의미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 때 들렸던 붉은악마의 환호나 지난 6월 서울광장 이용을 놓고 벌어진 정치ㆍ사회적 갈등, 최근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 광장 사용에 대한 논란 등 광장은 끊임없이 뉴스의 중심에 서고 있다.
광화문 광장 조성에 때맞춰 나온 이 책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도시건축학자 프랑코 만쿠조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대학 등 유럽 5개국 연구기관 연구원들과 함께 쓴 광장 연구서다. 광장의 발생지인 유럽에서 광장의 역사와 역할, 의미 등을 다층적으로 풀어냈을 뿐 아니라 유럽 24개국의 광장 60개의 과거와 현재를 700여장의 사진과 지도로 담아내 눈까지 즐겁게 한다.
광장은 지역 주민들이 모여 상거래를 하는 장터이자,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무대이며, 여러 건축물과 설치물이 조화를 이룬 예술적 공간이다. 또한 공동체 의식이 치러지는 공간이고, 군중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집회의 장소이다. 이렇게 다양한 광장의 역할을 훑어본 후 책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광장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저자들은 “모든 집이 그 안에 사는 가족의 모습을 반영하듯 모든 광장은 광장의 주인인 지역 주민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말한다. 대립과 갈등의 공간이 되어버린 우리의 광장 역시 우리의 모습이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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