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시공업체 K사의 금품로비 사건(5일자 10면)으로 건설업계의 뿌리깊은 비리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대형 건설공사 입찰과 관련한 비리구조를 근본적으로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거액의 로비를 하고도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재하도급 관행'과 비리 관련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은 금액규모가 큰 턴키 입찰공사를 따낸 다음 하도급 업체엔 '최저가 입찰'을 붙이고, 그 하도급 업체가 다시 재하도급 업체에 '최저가 입찰'을 붙여 이익을 남기는 게 관행"이라면서 "결국 최종 실제 공사비는 평균적으로 최초 낙찰가의 30% 수준이며, 나머지 70%는 건설사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턴키 입찰 건이 엄청난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공사를 따내기 위해 거액의 금품로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에 대한 가벼운 처벌도 문제다. 현행 건설기준법과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로비를 한 업체는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고, 돈을 받은 발주처 관계자는 형법에 의해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르다. 영업직원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 자기 돈을 써서 로비했다고 주장하면 건설사를 처벌할 길이 없다.
교하신도시 사건에서도 입찰 심의위원에게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전달한 K건설 직원은 "본인의 월급을 모은 돈을 드린 것일 뿐 회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을 받은 심의위원 역시 불구속기소나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간위원은 발주처 이해관계자가 아닌 것으로 해석돼 건설산업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개인 비리(배임수재 혐의)로만 처벌 받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공공발주 턴키 공사의 심의위원 규모를 축소하고, 뇌물수수ㆍ입찰담합으로 두 차례 적발된 건설회사는 등록을 말소시키는 내용의 '건설산업 선진화 방안'을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방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그간 3,000명 정도의 전문가들이 추첨을 통해 돌아가며 맡아왔던 턴키 입찰 심의를 내년부턴 중앙 70명, 광역단체별로 50명 이내의 공개된 심의위원들이 맡게 된다. 또 이들이 비리를 저지를 경우 공무원에 준해 처벌된다.
건설사가 금품제공에 개입한 사실이 적발되면 뇌물의 20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두번 적발되면 등록을 말소하는 '2진 아웃제'가 도입된다. 그러나 심의위원 규모를 축소하고 명단을 공개할 경우 오히려 로비가 더 횡행할 거라는 반론도 있다. 2진 아웃제도 영업직원이 회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 건설사를 처벌하기 힘든 한계가 여전히 남는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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