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골목길의 성취는 어디까지 통할 것인가. 이번에는 연극의 본고장 러시아에 안톤 체홉의 작품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바로 그 작품 '갈매기'를 1일부터 상연중인 게릴라극장의 73석은 매회 매진 사례다. 10여개의 보조석은 다반사. 이른바 '박근형표 연극'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개막 직전까지 배우들에게 일일이 감정선과 동선을 확인 또 확인하는 그의 연출 작업은 늘 보아오던 대로다.
개막 이튿날 귀한 손님이 왔다. 성형외과 의사 임중혁(45)씨. 강남에 개업중인 임씨의 가방에는 22종의 연극 팸플릿이 쟁여져 있었다. 공연 후 한숨 돌릴 만 해지자 두 사람은 임씨가 모아둔 팸플릿을 무대에 죽 둘러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야, 저런 것들도 있네!" 아직 명성을 날리기 전, 다른 극단의 이름으로 연출했던 '청춘예찬'의 팸플릿 등 자신에게도 없는 자료가 건재해 있음을 확인해 가는 박씨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2000년 7월 강강술래소극장에서 '청춘예찬'을 시작으로 최근작 '너무 놀라지 마라'까지, 박씨의 작품이라면 다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선생의 무대로는 생소한 번역극인데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임중혁)
"방황하는 젊음의 문제를 다룬 교과서적 고전이기 때문이다. 좌절ㆍ예술에 대한 생각 등을 나누고 싶었다. 고독의 문제 특히 내 작품에 내재돼 온 죽음이라는 테마를 잇고 싶은 마음이다."(박근형)
"이 작품 통해 우리 연극계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텐데."(임)
"국립극단에서 곧 체홉의 '세 자매'를 공연한다. 나는 체홉의 친근성을 보다 현재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연극 공부를 한다는 마음이 크다. 좋은 텍스트에 내재된 인물을 탐구하고 싶다."(박)
"가장 관심 가는 인물은."(임)
"뜨레블레프다. 사랑의 미련, 좌절된 작가의 꿈 등을 안고 사는 햄릿형 인물이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연극을 통해 젊은이들이 세상에 눈뜨거나, 다양한 인간의 관찰을 통해 스스로의 안목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그들에게 '다름'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주고 싶다."(박)
"일탈이란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임)
"세상은 네모 반듯한 걸 원한다. 그래서 연극은 그런 가치를 조장하는 세계에 대한 일침ㆍ풍자가 돼야 한다. 다음 작품으로 전봉준을 얘기하려는데, 역시 그 선상이다."(박)
"어떻게 풀어나갈 셈인가."(임)
"나의 허구다. 전봉준을 돈 때문에 일경에 넘긴 밀고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나는 동학은 안 끝났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2009년에 다다르기까지의 시간은 조선으로부터의 시간이 누적된 결과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박)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박씨를 기다리는 단원들 때문에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박씨는 지금 모스크바 연극제에 이 작품을 초청 받고 무대 조건, 숙박 문제, 러시아 현지 인력 문제 등 실무 차원의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 해 중국 베이징 조양구 극장에서 '청춘예찬'을 공연하고 극후 토론회까지 갖는 등 해외로 지평을 넓히고 있는 그에게 새 연출작 '갈매기'는 그에게 새 전기이기도 하다.
박씨는 "(일련의 해외 공연은) 나의 무대에 깃든 보편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라며 "쌓인 피로에도 불구, 엔딩 부분까지 완성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임중혁씨가 의사로서 그렇게 많은 자료 모은 것 보고 참 놀랐다"고도 했다. 30일까지 (02)763-1268
장병욱 문화전문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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