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유명대학 교수가 대형 건설사들이 공사입찰을 따내기 위해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행한 로비 실태를 낱낱이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지자체가 발주한 공사입찰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Y대 L교수(공학)는 4일 본인 연구실에서 몇몇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K건설 관계자로부터 받은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K건설 영업직원과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을 공개했다.
L교수의 증언과 녹음파일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 5월께 경기도 파주시에서 발주한 '교하 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A3건립공사'의 심사위원 후보군으로 선정됐다. 이 공사는 근처에 들어설 아파트의 주민센터를 신축하는 것으로 공사비가 690억원(추정 수주액)이었다. 입찰에 응한 업체는 H, K, D사 등 국내 대형 건설업체 3곳.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L교수가 심사위원 후보군에 등록되자마자 3사 영업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한번만 만나달라", 또는 "입찰에 참여했으니 잘 봐달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파주시청 관계자는 "심사위원 후보군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공개를 유지했는데 업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사 당일인 지난달 17일에도 업체들의 '작업'은 계속됐다. 이날 오전 5시 넘어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은 L교수는 평가장소에 도착한 오전 9시께부터 건설사 직원들이 보낸 휴대폰 문자에 시달려야 했다.
"부디 직장에서 잘리지 않도록 선처해 달라. 은혜는 잊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날 오후 5시에 끝난 심사위원 평가에서는 K건설이 최종 낙찰을 받았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야 알았다고 L교수는 말했다. 심사가 끝나고 열흘쯤 지난 28일 K건설 영업팀장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고맙다며 10만원짜리 롯데백화점 상품권 100장(1,000만원 상당)을 건넸다. 영업팀장은 "다음 주에는 상무님과 함께 와서 관행적으로 드리는 액수를 더 준비해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L교수는 "일부 심사위원의 경우엔 먼저 금품을 받은 사람도 있는 것 같다"면서 "평가점수가 만점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어떤 교수는 특정업체에 만점을 주며 점수를 몰아줬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L교수 외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건설사로부터 심사 전후에 금품을 받았는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심사위원 10명 가운데 3명은 파주시청 과장급이었고, 나머지 7명은 대학교수나 연구원 등 외부인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일절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이었던 파주시청의 C과장은 "입찰심사 전후로 업체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K대 H교수는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 전에 건설사 직원들이 설명한다고 들락거린 적은 있지만 금품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고, D대 J교수 역시 "전화를 꺼놓고 업체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금품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L교수에게 상품권을 건넨 K건설 영업팀장은 "그날 건넨 돈은 감사의 뜻으로 내 월급을 모아 드린 돈으로 회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로비가 있었음이 실제로 밝혀지면 그때 입찰결과에 대해서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L교수는 5일께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문준모 기자
강지원 기자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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