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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다 어른들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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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다 어른들 잘못이다

입력
2009.08.0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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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꿈 만은 아니었다. 지난 주 한국 수영계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뉴스가 전해졌다. '마린 보이' 박태환이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주 종목인 자유형 400m를 비롯해 3종목에 출전했지만 모두 결선에 진출하는데 실패했다는 비보였다.

우리가 스무 살 청년 박태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팬들은 물론 언론들마저 뜨거운 가마솥 위의 개미들처럼 '박태환, 왜 이렇게 망가졌나'식의 선정성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내며 희생양 찾기에 급급했다. 팬들의 실망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비난의 화살을 온통 박태환에게 돌린다면 우리 어른들은 너무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온통 수영복 논란만 있었지, 정작 수영은 없었다'는 말처럼 3일 폐막한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박태환의 실패가 남들 다 입는 최첨단 폴리우레탄 전신수영복을 착용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어른들의 계파 싸움에 전담 코치를 두지 않았던 탓인지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동안 수영계는 물론 한국 스포츠계에 끼친 박태환의 공헌이 단지 '로마의 실패'로 폄하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할대 강타자도 열의 일곱 번은 범타로 물러나는 법이다.

먼저 박태환의 공과를 짚어보자.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지만 불모지로만 여겨졌던 세계수영 정상에 혜성처럼 등극한 것은 가히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처럼 박태환은 아테네올림픽의 수모를 불과 2년 만에 극복하고 범태평양선수권을 거쳐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내밀었다.

그 이후는 우후죽순처럼 승승장구했다. 거침이 없었다. 2007년에는 멜버른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는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챔피언에 당당히 올랐다. 이전까지 세계수영선수권에서 결선 출발대에 선 한국선수는 한규철(98년 호주 퍼스)과 이남은(2005년 캐나다 몬트리올), 두 명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태환의 세계 정상 등극은 기적이었다.

이번 박태환 참패의 원인으로 지적된 대표팀과 전담팀 사이의 부조화, 고질적인 수영계의 파벌, 과다한 CF 촬영 등은 만일 결과만 좋았다면 속으로 '쉬쉬'하며 그냥 묻혀졌을 것이다. 어찌 보면 2012년 런던올림픽을 3년 앞둔 지금 불거진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사실 박태환은 최근 3년 동안 운동 선수들에겐 흔한 슬럼프 한 번 없이 너무 승승장구해왔다. 더욱이 올림픽 금메달에 목을 매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 2%가 부족했던 원인이 무엇이 됐든 박태환은 나름 최선을 다해 훈련에 매진 했을 것이고 로마에서도 혼신의 힘으로 물살을 갈랐을 것은 틀림없다. '지켜 보신 분들이 놀란 만큼 나도 놀랐다'는 그의 소감은 정말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박태환의 나이 이제 스물이다.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 박태환 주변에는 정직하게 조언을 하고 비판을 해주는 '네덜란드 삼촌'이 필요하다. 박태환은 6일 돌아온다. 돌아오는 그의 어깨가 너무 처지지 않도록 지금이야 말로 따듯한 격려의 시선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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