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권교체 직후 구 정권 실세, 또는 당시 혜택을 입은 것으로 소문난 기업 등을 향해 자못 살벌하게 사정의 칼을 빼 들었을 때부터 많은 이들이 불안감과 의구심을 품었다. 결국 예상대로 대개가 헛방 수사였음이 재판과정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조준했던 실세들의 범법사실을 밝혀내기는커녕, 압박용으로 건드렸던 상당수 주변 인물들의 혐의조차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초라한 결과물이다.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 프라임그룹 정ㆍ관계 로비의혹 등 그 많은 사례를 일일이 분석할 것도 없다. 물론 항소심에서 법원의 판단이 바뀔 여지는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크게 반전을 기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정치적 동기가 개입된 수사로 의심 받았던 사건들이었던 만큼 처음부터 수사의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검찰은 이들 사건의 재판과정을 보며 다시 한 번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검찰권 행사의 방향을 제대로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다. 현재 검찰이 받고 있는 국민적 불신의 업보는 바로 이 같은 구시대적 검찰권 행사의 관행을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신뢰 받는 검찰권 행사의 핵심이 정치적 중립임은 여기서 새삼 강조할 것도 없다..
우리 검찰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무한의 사정권력이다. 더욱이 정치적 갈등국면이 벌어질 때마다 번번이 정치권 스스로가 사정당국을 끌어들일 만큼 우리의 정치문화도 미숙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우리 검찰에 대해 다른 어느 국가의 사정기관보다도 수준 높은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무직인 장관이 검찰총장과 검사의 지휘 감독권과 인사권을 갖고 있는 등 검찰 중립을 가로막는 제도적 요인들도 엄존한다. 이런 요인을 제거하는 일이 중대하긴 하나, 그에 앞서 검사 개개인의 자세와 의지를 가다듬는 일이 우선이다. '직무 수행 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선 안 된다'는 검찰청법 규정을 그대로 준수하는 것, 그게 검찰 개혁의 출발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