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것들'의 버릇 없음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함무라비 법전에 있었다던가, 나폴레옹 원정군이 발견한 로제타 지방의 비문에 있었다던가. 그 누구도 '요즘 젊은 것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니 통쾌할 뿐이다. 그런데 왜 기성인들은 그런 시절을 겪지 않은 척, 아이들을 뜨악하게 바라보는 걸까. 중학교 동창 중 삐딱선만 타던 친구가 있었다. 그 애가 결혼해 사내애 둘의 엄마가 되고 별수없이 제 엄마가 했던 잔소리를 그대로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청소년문학상 투고 작품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도 '요즘 젊은 것들'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십대 때의 고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어른들로부터 곱지 않은 눈총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가 이렇듯 빠르게 자리잡는 걸로 보아 부모든 청소년이든 필요가 절실했던 모양이다.
청소년문학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듯 한 작품 안에 그 모든 고민들이 총망라된 소설들이 많았다. 가족이 해체되거나 불화가 심하다. 성적과 이성 문제, 특히 동성애가 눈에 띈다. 미성년의 임신 또한 빠지지 않는 소재이다. 이런저런 고민들을 가진 청소년들의 해방구란 의외로 단순하다. 오토바이와 밴드이다. 자칫 이런 요소들이 청소년문학을 규정 지을까 걱정이 되었다.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전거라면? 너무 건전하긴 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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