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키멜만 지음ㆍ박상미 옮김/세미콜론 발행ㆍ336쪽ㆍ1만6,000원
소외감(혹은 짜증)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과, 그것에 대한 현학적인(또는 거만한) 언어들. 미술과 미술평론에 관한 대중의 인식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술은 대중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대중은 그런 미술에 지쳐 이제 무관심하다. <우연한 걸작> 은 어쩌면 진짜 미술은 이런 선입견 밖에 있다는, 퍽 반가운 비밀을 털어놓는 책이다. 뉴욕타임스의 수석 미술평론가인 저자 마이클 키멜만이 말하는 예술의 핵심은 바로 '아마추어의 진정성'이다. 우연한>
저자는 "무언가를 사랑해서 열정을 쏟아붓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곧 예술이라고 말한다. 두 '예술가'를 예로 드는데,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와 치과의사 프랜시스 힉스다. 먼저 보나르. 저자는 연인 마르트의 폐쇄적 성격으로 인해 평생을 은둔자로 지내야 했던 그의 '비극'을 예술의 원천으로 해석한다. "그들의 삶은 고립되고 외로웠다. 어쩌면 그런 삶을 살았기에 보나르는 황홀한 내면의 비전을 그리는 화가가 될 수 있었다… 보나르가 마르트를 만나서 나온 결과를 두고 우리는 '우연한 걸작'이라 부를 수 있다."
다음은 힉스. 그는 전구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평생 7만5,000점에 이르는 전구를 모은 의사다. 저자는 중독적 취미에 사로잡힌 힉스의 삶 자체도 하나의 예술로 파악한다. "오래된 나무 진열장에 분류해 놓은 전구도 그가 만든 우연한 걸작이다. 내 말은 그의 수집품이 회화 같은 전통적인 예술이라는 뜻이 아니다. 창조적인 추동에서 비롯된 깊은 욕망을 최대한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창작과 수집과 심지어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조차 매일의 걸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때론 '예술 없음'이 걸작을 낳을 수도 있다. '즐거운 그림 그리기'라는 TV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밥 로스가 예로 등장한다. 저자는 은근슬쩍 광고를 섞어가며 26분 만에 뚝딱 완성하는 로스의 작품(혹은 프로그램)에서 '위안'이라는 미술의 가치를 찾는다. "직장이나 집에서 꼼짝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젤 앞에서라면 누구나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로스는 그의 유치한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인지는 개의치 않았다… 시청자들은 삶의 고충으로부터 해방되는 비법을 얻었다. 적어도 프로가 진행되는 동안만큼은 말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걸려있는 한 장의 사진은 예술을 일상의 지평으로 끌어내린다. 이름도 없는 아마추어의 작품인데 "어떤 신성하고도 우아한 유머처럼" 이 작품에는 고도의 대칭성과 비례미가 담겨 있다. "그러니까 예술은 반드시 앞문으로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뒷문으로 몰래 들어오는, 엉뚱한 우연의 결과이기에 더 놀랍다… 아마추어가 실수로 좋은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은 언제 들어도 고무적인, 삶의 중요한 전제를 알려 준다. 예술은 언제나 우리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문제는 우리가 그걸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것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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