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강시민공원. 예년 이맘 때 같으면 가족끼리 나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로 북적였을 이 곳이 한산했다. 공원을 거니는 몇몇 연인들만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한여름 밤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가 올 여름에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원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에 비해 공원을 찾는 시민이 70% 정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수영장도 열대야가 심하면 오후 8시 이후에도 2시간 연장 운영을 하는데 올해는 아직 연장 영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쫓던 풍경도 사라졌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주변에서 치킨집을 하는 이모(45)씨는 "지난해에는 시민공원으로 배달 주문이 하루 40여건 정도 됐는데 올해는 열대야도 없고 시민공원 공사까지 겹쳐 1~2건 주문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김모(53ㆍ여)씨는 "손님이 많이 줄었을 뿐 아니라, 오는 손님들도 에어컨 바람보다 바깥 바람이 더 시원하다며 가게 밖에 앉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여름 날씨예보의 단골손님인 '불볕 더위' '찜통 더위'가 실종됐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씨가 계속돼 열대야도 사라졌다. 이로 인해 여름 한철 장사를 기대했던 상인들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다.
올해 서울과 부산에서는 열대야가 단 하루 발생했다. 춘천과 대전은 한 번도 없었다. 기상청이 열대야 기준을 '하루 최저기온 25도 이상'에서 '밤 최저기온 25도 이상'으로 바꾼 것도 영향을 끼쳤지만, 7월 하순이면 열흘 이상 열대야가 이어졌던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낮에도 '찜통'이라 할 만한 더위는 보기 힘들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7월 평균 기온은 23.7도로 30년 평균기온보다 0.5도 낮다. 특히 서울은 7월 평균 24.1도로 30년 평균기온 대비 0.8가 낮았다. 이 같은 이상 저온으로 동해안은 바다로 뛰어들기에 아직 물이 차다.
이달 초 "올해는 평년보다 열대야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던 기상청은 예보가 크게 빗나가 머쓱해진 상황이다. 기상청 김승배 통보관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올해는 빨리 확장해서 우리나라를 덮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북쪽의 찬 공기가 내려와 한반도 상층에 머물며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더위를 몰고 오는 남쪽의 북태평양 고기압 대신, 동해 북부 해상으로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비정상적으로 확장하면서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남하했다는 것이다.
폭염이 사라지면서 해수욕장도 된서리를 맞았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는 이달 1일 개장 이후 159만명이 찾아 지난해 같은 기간(270만명)에 비해 100만명 이상 줄었다. 포항시 역시 6개 해수욕장을 다녀간 피서객이 예년에 비해 28% 가량 줄었다. 해수욕장 주변 상인들은 "경제한파에다 여름특수까지 사라져 매출이 지난해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여름 관련 상품들도 매출이 뚝 떨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계절상품인 에어컨, 선풍기의 경우 7월 한달간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10~20% 감소했다. 빙과류와 수영복도 5~10% 정도 매출이 줄었다.
열대야와 무더위 없는 여름 날씨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승배 통보관은 "장마전선이 일본 열도로 물러나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다음달 초까지 맑은 날씨를 계속되고, 기온은 평년보다 조금 낮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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