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된 독일계 한국인 이참씨의 원래 이름은 베른하르트 크반트이다. 2001년에 귀화한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씨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미국계 한국인인 로버트 할리씨의 한국인 이름은 하일씨이다. 그는 가끔 방송에 나와 영도 하씨 시조라고 한다.
한국에 귀화하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결혼을 통해 베트남이나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외국인이 한국인이 되고 있다. 귀화인이 공공기관장까지 맡게 되었으니 활동영역에서 귀화인이냐 토종이냐 차별은 점차 없어질 것이다.
결혼을 하면 남편 성을 따라야 하는 서양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결혼해도 처녀적 성을 유지할 수 있다. 헌데 결혼으로 귀화한 사람도 그렇고 본인 의지로 귀화한 이들도 그렇고, 대부분이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다. 필리핀계나 캄보디아계도 모국에서 불렸던 이름이 아니라 성이 한 글자, 이름은 두 글자인 표준형 한국 이름을 갖는다.
본래 이름 포기한 귀화이민자
우리나라 민법이나 가족관계등록법에서 외국 이름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민법에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이나 엄마의 성을 따르도록 제한할 뿐 외국인 이름을 거부하지 않는다. 가족관계 등록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에도 외국 성을 못 쓴다는 규정이 따로 없다.
얼추 비슷한 항목을 찾아보면 44조에서 '자녀의 이름에는 한글 또는 통상 사용되는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고 96조에는 '외국의 성을 쓰는 국적취득자가 그 성을 쓰지 아니하고 새로 성, 본을 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이라는 조건이 들어있어서 귀화 한국인이 외국의 성을 그대로 써도 무방하게 되어 있다. 2003년에 개정된 호적예규에는 이름의 글자 수는 다섯자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이름을 짓는 경우이고 외국에서 종전에 사용하던 성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한다.
그런데도 귀화 외국인이 꼬박꼬박 한국식 이름을 짓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관행을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인이 되었다는 상징성을 보여주어서일까.
고려나 조선시대에 한국에 귀화한 이들이 한국식 성과 이름을 가진 것은 그것이 권력과 연관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성을 갖는다는 것은 특권층이라서 귀화한 이들에게는 임금이 특별히 성을 하사하곤 했다. 그러니 그렇게 내려진 성을 지키는 의미가 있었다.
헌데 오늘날 성이란 그저 남과 나를 구분해 부르는 명칭일 뿐이다. 거기에 가문의 내력과 세습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엄마 성을 따라도 좋고 스스로 창성을 할 수 있게 만든 가족관계 등록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런 의미가 퇴색했다. 그러니 성이란 이름과 더불어 한 개인의 개성을 표시하는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출신국을 본으로 내세울 수 있어야
그렇기에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면 그 외국 성과 이름을 간직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러시아에서 미국에서 독일에서 왔다는 그들의 개성을 스스로도 자랑스레 내세우고 또 후손들에게도 넘겨줄 수 있다면 한국인이라는 것이 다만 혈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 되기로 했다는 그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널리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치관은 한국인이 인종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모두가 받아들이게 해서 혈통을 이유로 귀화 이민자나 그 자녀를 차별하는 일이 잘못임을 깨우쳐 주리라.
본도 한국의 지명이 아니라 호주나 베트남이라고 표시할 수 있고 귀화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그 뿌리를 자랑할 때가 됐다. 스스로 위축되지 않아야 주위에서도 존중해준다.
물론 이를 위해서 호적예규도 고칠 필요가 있다. 이름을 다섯 글자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삼천갑자동방삭거북이' 같은 이름을 막자는 뜻인지는 몰라도 다민족 시대의 한국에는 불필요하다. 이제 한국을 구성하는 인종과 민족은 너무도 다양해졌고 그 다양성을 자랑할 시대가 되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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