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자 세계 최대 장벽 국가다."
요즘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중국의 법적, 제도적 규제나 보이지 않는 문화적 차이 등 보이지 않는 장벽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중국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중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자국 기업(내자 기업)에게는 유리하게, 외국 기업(외자 기업)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종의 '신(新) 중화주의'인 셈이다.
■ '바이 차이나' 정책
전자업계에서는 '바이 차이나' 정책을 대표적인 신중화주의로 꼽고 있다. 바이 차이나 정책이란 정부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경우 반드시 중국 업체 제품을 써야 한다는 것. 중국 정부는 이를 아예 법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4일 발표한 '내수확대 경제성장 촉진의 프로젝트 건설입찰 감독관리 강화의견에 관한 통지'라는 긴 제목의 포고문은 의견 형식이지만 실제로 구속력을 갖고 있어서 법이나 다름없다. 중국 정부는 포고문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감사를 해서 제재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전 하향 정책도 신중화주의다. 가전 하향이란 도시 이외 지역에서 가전 제품을 구매하면 가격의 일정 부분을 중국 정부에서 부담하는 일종의 가전 보조금이다. 중국 정부는 그만큼 소비자들이 싼 값에 가전 제품을 살 수 있어 내수 시장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올 들어 수 차례 가전 하향 참여 업체를 입찰을 통해 선정했다. 입찰은 가격 상한선을 그어 놓고 그 이하에 판매할 수 있는 업체들만 참여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도 중국 내수 시장을 넓힐 기회로 보고 TV 냉장고 세탁기 휴대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참여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정한 가격 상한선이다. 국내 업체들은 해당 가격 이하로 참여할 경우 이윤을 남기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결국 싼 가격에 판매하는 중국산 저가 제품만 혜택을 보게 됐다.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정한 가격 상한선은 외국 기업은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며 "안 보이는 장벽을 친 셈"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도입한 에너지절약 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 정책은 가전 하향처럼 에너지 절약형 에어컨을 사면 중국 정부에서 일정 금액을 보조해 준다. 중국 정부는 에어컨 제조업체 19개사를 참여 업체로 선정했는데, 외국업체는 5개에 불과하며 한국 업체는 삼성전자 한 곳 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기업 제품은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 제품 종류가 많지 않다"며 "외국 업체들은 중국 업체들을 위한 구색 맞추기 형태로 끼워 넣은 느낌이 강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 각종 제도적 규제
직접적 장벽인 제도적 규제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동차 업계의 연비 규제.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내년 초 시행을 위해 업계에 회람시킨 연비 규제안에 따르면 2015년까지 자동차 평균 연비를 18% 높이도록 돼 있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평균 연비가 올해 리터당 15.1㎞에서 2015년 17.7㎞로 올라간다. 미국,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보다도 높다.
문제는 중국의 이 같은 연비 규제 강화가 소형차 생산에 집중하는 중국 자동차 업계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새 연비 규제안이 시행되면 중형차의 경우 연비를 26%까지 끌어 올려야 하지만 소형차는 연비 상승폭이 9%에 불과하다"며 "현대자동차 등 중국에 진출한 외국 업체들은 연비 때문에 생산 모델을 재조정해야 할 처지"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모조 자동차 부품이 극성을 부리는 것도 문제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현지 영세업체들이 한국을 비롯한 외국산 자동차 부품을 베끼고 있다. 내수 판매 뿐 아니라 해외 수출까지 하고 있어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상반기에만 중국에서 100억원에 이르는 모조 부품을 적발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 정부는 형식적인 단속에 그쳐 외국 업체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중국식 표준화 작업도 마찬가지. 중국이 세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제품 또는 기술에 대해 국제 표준이 아닌 중국만의 표준을 고집하는 경우다. 중국식 표준화 작업을 진행할 때에는 철저하게 중국 기업들의 입장이 반영돼 외국 업체들의 불만이 크다.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는 "표준 제정 작업에 중국 기업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표준이 제정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 기업에 한해서 기업 소득세를 기존 33%에서 25%로 낮췄다.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세금 차별 뿐 아니라 세무 조사까지 강화하고 있다. 코트라(KOTRA)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소득세를 낮춰서 줄어든 세수 확보를 위해 외국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나서라
이 같은 중국의 '신중화주의'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 의견이다. 국내 기업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신중화주의에 대한 대응은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정부가 나서서 중국 정부에 법, 제도적 조치를 공정하게 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이 많다보니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강하게 발언권을 행사해 불리한 조치들을 바꾼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는 전략도 필요하다. 위안화가 오르고 신노동계약법 시행 등으로 고용 조건이 악화된 만큼 생산 거점으로 접근하기 보다 판매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트라 중국팀의 김명신 과장은 "중국 내수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중국이 차별하더라도 판매 관점에서 진출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올라가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유인호 기자
■ 유통업체 장벽 극복하려면…
지난해 8월 롯데백화점의 중국 첫 진출점포인 베이징 1호점 개점작업을 주도했던 고윤철 중국사업부 부문장은 "말 그대로 매일이 전쟁이었다"고 했다. 외자 유통기업의 설립은 중국법상 '외상투자기업 지도목록' 의 장려, 제한, 금지 업종 중 제한업종으로 분류되어 원래 심사가 까다롭다.
특히 중국의 부동산과 증권시장을 겨냥한 외국 자본의 침투를 극도로 꺼리는 관련 부서들이 대규모 외국자본 유입 심사를 서로 미루는 일이 빈번해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오직 하나, 전담 인원을 배치하고 중국내 지인과 그들의 동기동창까지 총동원해 매일매일 롯데의 신청 서류가 어느 부서에 가 있고 무슨 이견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소방검사는 더 까다로웠다. 고 부문장은 "롯데백화점을 통해 중국에 처음 진출하는 국내 브랜드들의 경우 매장인테리어를 교민이나 조선족 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중국식 '??시'(관계) 채널이 없어 개별적으로 소방국 심사를 통과하기가 난망한 상태였다.
결국 소방국 담당 책임자와 개인적인 식사 자리를 마련한 끝에 소방국이 추천하는 대행업체를 통해 개별 브랜드가 아닌 일괄 심의를 진행한 후에야 오픈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이지만 물 밀 듯 들어오는 외국자본에 대한 견제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자국 기업들을 육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은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심화섭 신세계 이마트 중국본부장은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가 외자 유통업체의 시장장악 견제를 위해 대항마를 키우려는 분위기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상무부 직속 국영 유통업체인 화용만가이다.
이 업체는 지난해부터 상무부 홍콩지사의 중국내 역투자 방식을 통해 중국의 소규모 슈퍼와 할인점 등 유통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합병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뤄 시장장악력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현재 대형할인점만 80여개를 거느린 상태. 심 본부장은 "중국이 WTO가입을 한 상태라 노골적으로 지원할 수는 없어도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각종 인허가에서 자국 업체에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매장 개설을 위해 복잡한 인허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소매 유통업의 본질상 중국내 신중화주의를 정면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 본부장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 소비자를 사로잡을 것인가"라는 우회작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외국기업으로서의 겸손함과 철저한 현지화 노력, 중국인과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등을 통해 정부가 아닌 소비자를 먼저 사로잡으라는 것이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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