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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원래 풀뿌리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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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원래 풀뿌리는 위대하다

입력
2009.07.3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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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성장하는 동안 뿌리에서 특수한 물질을 분비한다. 일꾼을 부리는 일종의 품삯으로 당분이나 지질, 아미노산과 같이 자신에게도 요긴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흙 속에서 잠자던 균의 포자들은 이 뿌리 분비물을 배지 삼아 발아한다. 이 효과는 때로 강력해서 균의 종류에 따라서는 뿌리 분비대에서만 발아하기도 한다.

곰팡이나 버섯과 같은 균류를 포함한 미생물은 흙 속의 생물 사체를 최종적으로 분해해서 식물 뿌리가 흡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상의 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흙 속에서의 양분 조달이 충분해야 하는데, 뿌리 분비물에 고용된 일꾼들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활동하는 뿌리 한 가닥을 두고 보면 실로 연약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뿌리주위 몇 밀리미터라고 하는 뿌리 분비대는 그 존재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이즈음 숲의 흙을 한번이라도 헤집어 본 사람은 안다. 흙은 흙이 아닌 식물들의 뿌리매트로 구성되어 있음을. 어느 것의 뿌리인지, 어떤 식물의 뿌리인지 구분도 없이 하나로 얽혀 그야말로 흙을 가득 메우고 있는 뿌리들. 서로 얽힌 뿌리에서는 뿌리 분비대 역시 서로 얽힌다. 결국 하나로는 미약하나 숲이라는 전체 구조 속에서 숲 바닥은 거대한 뿌리 분비대 자체가 된다. 이른바 숲의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숲 하층을 가득 메우고 있는 풀은 속성상 수염뿌리를 가지기 때문에 굵은 뿌리 없이 가는 뿌리 형태로 얕고 넓게 퍼진다. 높은 키로 서 있는 나무는 지상의 줄기와 같이 거대한 뿌리구조를 깊은 흙 속까지 뻗어 물과 양분을 끌어올린다. 놀라운 것은 나무뿌리가 끌어올린 물과 양분이 야간에 풀 뿌리들이 얽혀있는 표면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한층 놀라운 것은 이런 뿌리 분비대의 결실을 숲의 미약한 씨앗이나 어린 식물이 함께 거둔다는 점이다. 어미에게서 별스러운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풀씨도 거대한 숲 흙에 떨어지면 공동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린 나무는 비록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해도 당분간 숲에 마련된 풍부한 양분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놀라움을 넘어선 믿음이 충만한 구조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 했다. 중앙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나라를 지탱하고 자잘한 풀뿌리들이 실질적으로 지역민의 복지를 챙긴다. 그런데 얼마 전 경기도의회는 농ㆍ산ㆍ어촌과 도서 지역, 학생 수 300명 미만 초등학교의 무상급식 예산을 모두 없앴다.

그 명분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구구하다. 수도권의 소규모 초등학교 학부모로 12년을 꼬박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었다. 사는 곳을 잘 알려주지 않으려 했던 한 녀석은 외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학년 초마다 급식비를 해결해야 할 친구가 있나 살펴야 했다. 캠프나 현장 학습 행사마다 혹시 비용 때문에 절망하는 친구는 없을까 늘 마음이 쓰였다.

학교에서의 한 끼 밥이 그대로 희망이 되는 불행한 아이들의 밥그릇을 두고 너무 야박한 풀뿌리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지방의원들은 풀뿌리가 아니다. 굵은 나무의 잔뿌리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정치는 애초 지향한 풀뿌리 정치가 아니라, 힘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약육강식의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이 불행한 정치 행태는 의미 있는 생태적 비유보다 이런 개그적 야유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무와 같이 거대한 의원님들, 정말 치사하기 쉽죠이~잉.

차윤정 생태전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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