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부근의 한 북카페. '스르륵, 스르륵.' 시끄러운 수다로 떠들썩한 여느 카페와 달리 180㎡ 공간에는 조용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잔잔히 흘렀다. 전화가 걸려온 손님들은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평일 오후인데도 카페의 전체 좌석 90석 중 절반이 찼다. 특히 햇볕이 잘 드는 2층 테라스 대형 유리창 앞에 일렬로 배치된 1인용 좌석 16개는 빈자리가 없었다. 2인용, 4인용 나무 책상에도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치과의사 이동연(29)씨는 휴가 기간인데도 오전 10시부터 이 곳을 찾았다. 그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가 도난 당한 '모나리자'를 통해 현대 서구문명을 살핀 장편소설 <스키다마 링크> 를 절반쯤 넘기고 있었다. 스키다마>
이씨는 평소에도 쉬는 날이나 주말을 이용해 한 달에 7,8회 정도 혼자서 북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카페 사장 최원석(34)씨는 "특히 평일 손님의 절반 이상이 혼자"라며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고 전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으려는 젊은 나홀로족들이 늘면서 북카페가 성업 중이다. 카페와 도서관, 서점, 각각을 조금씩 닮아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몇 시간씩 혼자서 보낼 수 있는 북카페가 나홀로족들의 '여가 아지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북카페는 2,3년 전부터 대학가 등 젊은 층이 많이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홍익대 주변에 10곳이 들어선 것을 비롯 삼청동,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 대학로 등 서울 시내에만 20곳을 넘는다.
지난 4월 홍익대 근처에 북카페를 차린 서형기(41)씨는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테마카페 중에서도 북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에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북카페를 찾는 손님 대부분은 업무 스트레스, 취업 경쟁 등에 지친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싱글이라는 게 업소 주인들 얘기다. 홍익대 인근 한 북카페 주인은 "대학가에 있지만 대학생보다는 직장인이나 프리랜서 등이 주 고객층을 이루고 있다"며 "낮에는 여성들이, 해가 저물면 직장에서 퇴근한 남성들이 혼자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김성진(30)씨는 "여자 친구도 없어 저녁에 딱히 시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업무 스트레스를 풀면서 가볍게 쉴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북카페를 애용하게 됐다"며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도 찾을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고 말했다.
북카페에는 일반 카페의 뜨내기 손님들과 달리, 꼬박꼬박 출근도장을 찍는 '단골 고객'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나홀로족의 이용 때문이다. 대학원생이라는 한 여성은 " 친구들을 만나 시끄럽게 떠들어봐야 남는 것도 없고 그냥 혼자 있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다"며 "3년 전부터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2시간 이상 혼자 북카페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1,667만3,000여 가구 중 1인 가구 수는 335만700여개로 10여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이 급증하는 나홀로 족을 타깃으로 최근 혼자 먹는 고깃집, 1인 여행 패키지, 공연장 싱글 티켓 등의 상품들이 출시되는 등 '혼자 즐기는 문화'가 발을 넓혀가고 있는데, 그 중심에 북카페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북카페의 매력으로 첫손에 꼽는 것이 '고독의 공유'라는 점이다. 혼자만의 고독을,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생 김보라(26ㆍ여)씨는 "방에서 혼자 있으면 갑갑한데 북카페에 오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어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방콕'을 숙명으로 여기는 '은둔형 외톨이'와 달리, 혼자 있더라도 '소통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들이 도서관 대신 북카페를 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손님은 "도서관은 고시생이나 취업 준비생으로 가득해 갑갑한 느낌이 들어 도서관 대신 북카페를 찾는다"고 말했다. 북카페에서 주로 읽히는 책들은 무겁지 않은 소설, 여행 관련 서적, 예술이나 IT 관련 서적들이라는 게 업소 관계자들 얘기다.
한 북카페 사장은 "혼자 오는 단골 손님들은 특별한 교감도 없고 말 한마디 나누지도 않지만 서로 알아서 그들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며 "혼자이면서 그 혼자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 때문에 북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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