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단돈 100달러 손에 쥐고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국비장학생으로 교육심리학을 공부했던 유안진(68ㆍ전 서울대 교수) 시인. 루스 베네딕트의 일본 문화 연구서인 <국화와 칼> 이 당시 이미 미국 대학의 부교재로 쓰이고 있었지만, 우리의 민속에 관한 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던 현실은 그를 안타깝게 했다. "나라에 진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유씨는 귀국하자마자 민속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국화와>
시골 구석구석, 도시 아파트단지의 노인정을 찾아다니면서 "새우깡과 막걸리, 빈대떡 사 드리고" 촌로들을 만나 옛 이야기를 채록했다. 그 발품의 결과로 유씨는 2006년 대학에서 퇴임하기까지 시집과 전공에 관한 책말고도, 우리 민속에 관한 여러 권의 탁월한 연구서를 냈다.
유씨의 열네번째 시집 <알고(考)> (천년의시작 발행)는 우리 전통ㆍ민속에 녹아있는 오랜 삶의 지혜에 시적 상상력을 결합시킨 '민속테마시집' 이다. 알고(考)>
그의 화두는 근대화의 광풍 속에서 버려야 할 것으로 깎아 내려졌던 전통의 재발견이다. 가령 한국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에 진출하고 그 열기로 전국이 뜨거워졌을 때 시인은 그것이 '널뛰기, 그네뛰기, 사방치기 같은 놀이로 하체를 단련시킨 덕에, 임신출산력이 건강했던 우리 어머니들이, 건강하게 낳아서, 제기차기 놀이로 눈과 발의 협응력을 키워준 덕분'('제기차기와 축구'에서)이라고 바라보는 식이다.
그의 이런 태도를 복고취향으로만 볼수 없는 까닭은 우리의 민속적 전통에 대한 고찰을 내적 자성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 탓에 조상 탓까지'라는 시에서 시인은 '모름지기 발복이란/ 죽은 이가 명당에 묻힐 자격이 있어야 하고/ 자손이 복 받을 자격이 있어야 하고/ 풍수도 사심이 없어야 명당이 눈에 보인다'며 풍수지리에 대한 현대인의 왜곡된 시선(묏자리 잘 쓰면 자손들이 번창한다는)을 바로잡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점검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이라는 우리의 웃음의 전통을 되살려낸 시편들도 좋다. '엿사시여 엿사뿌렁/ 울능도라 호박엿을/ 전라도라 찹쌀엿을…' 이라는 구성진 엿장수의 노랫가락을 채록한 시 '엿 먹어라'를 비롯해, '떴다 떴다 무지개 떡/ 정절부인 정 절편/ 다리 아프다 선 돌떡/ 올까 했는데 가래 떡/ 처녀 부끄러 고추 떡…'으로 시작되는 '음떡과 양떡' 같은 시들은 독자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시집에는 이뿐 아니라 제웅놀이, 붕어밥주기 등 정월대보름 풍속('정월 대보름 쉬다'), 새끼줄과 고추로 만든 금줄('아파트의 금줄'), 결혼을 앞둔 아들을 향한 동네어른들의 초야(初夜)교육 등 우리 전통적 삶을 구성하던 다양한 풍속들이 담겨있다.
유씨는 "우리 전통 사회의 육아방식, 여성민속 등의 연구에 푹 빠져 있던 1990년대 중반부터 틈틈이 민속시들을 써왔다"며 "민속을 함축적인 시로 녹여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정교하게 짜여진 우리 민속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고 싶어 시집으로 묶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 출간에 앞서 시인은 활판인쇄 시선집 <세한도 가는 길> (시월 발행)도 출간했다. 첫 시집 <달하> (1970)부터 지난해 출간한 <거짓말로 참말하기> 까지 13권의 시집 중 시인이 자선한 100편이 수록됐다. 거짓말로> 달하> 세한도>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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