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소설가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에서 '죽음의 신'이 한 소년의 영혼을 거두려 독일 작은 도시 몰힝에 갔다가 그곳에서 책 훔치는 소녀를 만난다. 죽은 소년의 여동생 리젤이다. 오빠 장례식에서 처음 책을 훔친 아홉 살 어린 소녀 리젤은 글 읽기와 책에 대한 남다른 갈망으로 이후에도 다섯 권을 더 훔친다. 훔친 책을 읽으면서 리젤은 전쟁과 공포의 어두운 시절을 이겨내고, 말과 글의 상처와 치유의 힘을 실감하며, 선악의 모순으로 얽혀 있는 인간과 삶의 본질과 휴머니즘의 가치까지 깨닫게 된다. 아름답고 따뜻한 '책 도둑'이다. 책도둑>
▦옛날부터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했다.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지식을 탐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주인은 알고도 모른 척했으며, 딱한 사정을 듣고 오히려 도둑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 경찰이 서울 종로 일대 대형서점을 돌며 잡은 책 도둑은 옛날과는 다른 모양이다. 지갑 속에 수십 만원을 갖고 있는 공기업 직원, 하루 수십만 원어치를 훔친 유명 미대 출신의 여성, 대학교수, 대학생, 학원강사, 유복한 가정주부 등 '가난'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이 많은 것도 특이하다.
▦대형서점에서 없어지는 책은 평균 매출액의 1~2% 정도. 서울 강남의 한 서점의 경우 한 달에 3,000만~6000만원으로, 책으로는 5,000여권이나 된다. 관리 소홀로 인한 분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책 도둑이 가져간 것이다. 도난 방지를 위해 서점들이 책에 전자텍을 부착하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안내 직원을 서가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지만 전문 책 도둑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사복감시원을 두기도 쉽지 않다. 서점의 이미지 추락은 물론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엔 의심 받은 고객의 항의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책 도둑에 대한 인심은 여전히 후하다. 순간 욕심으로 훔쳤거나, 청소년의 경우 책값만 계산하면 그냥 보내준다. 비공식적으로 책값의 3~5배를 변상토록 하는 서점도 있다. 정도가 심하면 집에까지 가 본다. 이전에 훔친 책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십중팔구는 있다. 심지어 1,000권 이상을 한 서점에서 계속 훔쳐 인터넷으로 판 '전문가'도 나왔다. 서점을 자신의 책 창고쯤으로 여기는 진짜 도둑이다. 그러나 이런 '꾼'이 아니면 서점이 경찰까지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바늘 도둑을 소 도둑으로 키우는 건 아닌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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