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만9,000여명 중 7,000여명이 중국동포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그 복판에 자리한 대림중앙시장의 한 곁길로 3분쯤 걸어가면 허름한 4층 건물의 1층에 '대림중앙시장1길 경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한국 국적을 회복한 중국동포를 위한 국내 유일의 경로당이다.
27일 35.5㎡(10.7평) 남짓한 경로당에선 이른 아침부터 20여명의 노인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마작을 즐기고 있었다. 왁자한 대화와 웃음소리까지 더해 여느 경로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2006년 4월 문을 연 이 경로당은 만 65세부터 87세까지 106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사립 경로당으로 정식 등록했다. 1994년 귀화한 중국동포 사업가 김신복(58ㆍ여)씨가 보증금 1,000만원과 매월 집세 50만원을 부담해오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국적을 회복할 경우 만 25세 이상 자녀를 초청할 수 있게 되자 중국동포 1세대의 고국행이 줄지었다. 평생 살던 곳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녀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하지만 고국에 동화되기란 쉽지 않았다. 같은 한국어라지만 쓰는 단어가 많이 달랐고, 사고 방식과 관습도 달라 원주민들과 묘한 마찰을 일으켰다.
'조선족은 과격하다'라는 부풀려진 소문이 편견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에 찾아가면 냉대 받기 일쑤였다. 정정자(71ㆍ여)씨는 "동네 경로당에 사교춤을 배우러 갔더니 대뜸 '중국에서 왔어요? 그럼 안 받아요'라고 해서 돌아오고 말았다"고 말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영등포 지역 귀한(歸韓) 노인들끼리 2004년 모임을 만들었지만 마땅한 장소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보다 못한 김신복씨가 팔을 걷었다. "시장통이나 비좁은 공터에서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당시엔 사업(무역업)이 제법 잘돼서 경로당 사무실을 임대 계약했지요."
강문갑(71)씨는 "경로당 덕분에 새로운 세월을 맞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동포 노인 80~90%가 반지하 월셋방에 살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배우자 없는 홀몸이다. 경로당 회원만 해도 106명 중 부부 10쌍을 제외한 86명이 독거노인이다.
자녀를 초청한 경우는 많지만 같이 사는 건 언감생심이다. 자녀들은 취업 허가 기간 동안 돈 버는데 매달릴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같이 살면 30만원 안팎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과 8만여원의 노인연금이 끊겨 자식에게 짐만 될뿐이다.
강씨는 "햇빛이 안들어 낮에도 전깃불을 켜야 하는 단칸방에서 사는 터라 새벽부터 경로당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신분희(70ㆍ여)씨는 "중국에선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일상의 낙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경로당이 생기기 전엔 삶이 무미건조하기 그지 없었다"고 말했다.
경로당은 외로움을 달래는 공간에서 생활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매주 5,000원씩 걷어 회원들에게 주 6일 점심을 제공한다. 고맙게도 쌀이나 라면을 지원해주는 단체가 여럿이고, 대한노인회에서도 급식 비용을 대준다. 김시진(73) 경로당 회장은 "동포 중엔 하루 세 끼를 못 채우는 결식 노인들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급식을 하기 전엔 느지막이 '아점'을 먹고 11시쯤 경로당에 나오는 회원들이 많았다. 이날 반찬은 호박볶음, 버섯부침, 멸치조림과 오이냉국. 소박한 찬이었지만 행여 양이 부족할세라 "밥 좀 더 들라"고 권하기에 바쁜 급식담당 조병순(70ㆍ여)씨의 배려만큼은 푸짐했다.
오후 4시40분. 회원들이 노란색 조끼와 모자를 착용하고, 빗자루와 쓰레받이, 쓰레기봉투를 챙겨 나섰다. 주말과 비오는 날을 빼고 날마다 하는 청소 봉사다.
지난해부터 하루 30여명 회원들이 중앙시장을 비롯해 대림2동의 골목 구석구석까지 청소한다. 규정에 무지한 중국동포들의 쓰레기 무단투기 때문에 동네 환경이 나빠진다는 성토도 매일 이어지는 '노란옷 행렬' 덕에 많이 잦아들었다.
김시진 회장은 "대림동엔 우리 아들, 손자나 다름없는 동포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우리가 청결을 책임지려 나섰다"며 "'수고하신다'며 알은체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우리도 이웃으로 인정받는 듯해 기쁘다"고 말했다.
청소만이 아니다. 올 3월엔 평소 갈고 닦은 노래와 춤 솜씨로 인천의 한 양로원에 위문공연을 다녀왔고, 5월엔 수원의 한 장애아동 시설에서 목욕봉사를 했다. 영등포구에서 회원수가 두번째로 많은 경로당이다 보니 지역 봉사단체와의 협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회원들의 숙원은 구립 경로당으로 전환하는 것. 불경기에 김신복씨의 후원에만 기댈 수 없는 노릇이다. 구청 지원을 통해 지역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바람도 숨어 있다.
그들은 "기여한 것도 없는 우리가 고국에서 과분한 혜택을 입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제한이 없던 가족 초청 인원을 '1년에 1명, 최대 3명'으로 줄인 것엔 "동포들을 이산가족으로 만드는 조치"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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