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년 전 서울 광화문 뒷골목 술집의 외상장부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8일 1950년대 말부터 1962년까지 날짜별로 외상 내역이 정리돼 있는 '사직골 대머리집'의 외상장부를 공개했다.
총 세권으로 구성된 장부에는 외상을 달아놓은 사람의 이름과 소속 기관, 외상금액을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어 놓고 외상값을 갚았을 경우 '×' 표시를 해놓았다.
외상장부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당시 이 술집의 단골이었던 기자, 문인, 방송인, 교수 등 300여명. 그 중에는 탤런트 최불암, 오지명, 김성원 등을 비롯해 미술평론가 이구열, 진념 전 경제부총리, 손세일 전 국회의원 등 저명인사의 이름도 들어있다.
수록된 기관은 서울시청, 문교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공공기관, 대학부터 광화문 인근에 있는 언론사까지 총 71곳에 이른다. 이들의 외상 술값은 대부분 당시 금액으로 100~300원 수준이고, 일부 회식을 하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은 경우 1,000원을 넘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당시는 자장면 한 그릇이 15원, 80㎏ 짜리 쌀 한 가마니가 3,000원 수준이었다.
명월옥(明月屋)으로도 알려져 있는 '사직골 대머리집'은 김영덕씨가 50여년간 운영하고서 그의 사위인 이종근씨가 이어받아 영업을 하다 78년 10월 문을 닫았다. 이 장부는 식당 단골 중 한 명이었던 극작가 조성현씨가 이씨로부터 전해 받아 지금까지 보관해 오던 것이다.
1960~70년대 광화문 인근의 청진동, 당주동, 도렴동, 사직동 일대에는 막걸리와 소주에 생선찌개, 구이, 묵무침 등을 안주로 파는 크고 작은 술집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일대에서 유명했던 술집으로는 대머리집 외에 청일집, 열차집, 대림집, 고향집 등이 꼽힌다.
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은 "사직골 대머리집 뿐만 아니라 광화문 뒷골목 술집들은 신문 방송 종사자 또는 문화계 인사들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등에게 외상 특권(?)을 주었다"며 "이들 술집들은 문화인, 언론인, 관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일종의 문화 사랑방이었다"고 말했다.
역사박물관의 관계자도 "외상장부 하나로 신용사회를 만들었던 당시 풍속이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 장부는 30일부터 9월2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광화문연가:시계를 되돌리다'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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