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부동산 거품 때 은행 빚을 어떻게 썼는지를 관찰하면 신(新)버블 논쟁이 일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듯하다. 대개 미국인들은 5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할 때 1억원(20%) 정도의 현금에 은행 빚 4억원(80%)을 낸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하에 이자율이 낮으니 큰 부담은 없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투기에 뛰어들어 집값은 계속 오른다. 4억원에 대한 이자는 계속 불어나도 집값이 오르니 기분은 만점이다. 문제는 이자를 내고 나면 가계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니 그만큼 은행에서 대출할 여력이 생긴다. 그 시점의 담보가치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추가로 1억원 정도를 빌릴 수 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는 약간 다른 차원의 '폭탄'으로 작용한 홈에쿼티론(home equity loanㆍ주택지분 담보대출)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도 사고 살림도 하고 주택개량도 한다. 일단 빚 얻어서 질펀하게 써대는 것이다.
하지만 거품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거품이 꺼져 집값이 폭락했을 때는 어김없이 개인파산이 기다렸고, 뒤 이어 은행 부실이 터져 지금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았다. 우리 주변에서도 무리하게 투자를 했다가 유사한 방식으로 순식간에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를 자주 봤다. 그만큼 거품의 후유증은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제20차 라디오ㆍ인터넷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에서 "출구 준비라고 말을 하지만 저는 그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는 맞는 말인 듯하다. 출구 준비(Exit Plan)라는 것은 시중에 많이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려는 계획이다. 경제계에서도 사실 출구 준비가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 쏟아 부은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증시쪽으로 몰린다는 것이 문제다. 시장을 살리려고 돈을 풀었더니 '투기' 자금으로 변해서 부동산과 증시를 공략하고 있다. 유동성을 회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곳으로 돌리라는 주문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난해 재산세와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인하카드를 들고 나왔을 때부터 예상한 일이다. 부동산 침체 극복이란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부동산 거품을 인위적으로 일으켜 결국 정책적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끓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특히 강남의 부동산 시장은 정치ㆍ사회적인 특수성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 전략이 매우 정교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강남 버블을 꺼뜨리려고 백방으로 수를 썼으나 허사였다. 대세가 굳어져 버리면 되돌리기 어렵고, 최종 피해자는 오히려 변방의 서민이 될 공산이 크다. 투자자들 역시 거품을 겁내기보다는 자칫 거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비' 같은 측면이 있다. 최종적으로 누군가 얻어맞을 폭탄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산거품이란 계속해서 끌어들일 얼간이들이 존재하는 한 계속 돈을 벌게 되는 일종의 자연스런 '폰지형 사기방식'(Ponzi schemeㆍ피라미드 방식)이다. 그러다가 결국 더 이상 끌어들일 얼간이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폴 크루그먼의 저서 <불황의 경제학> 에 나오는 얘기다. 불황의>
조재우 경제부 차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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