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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을 모셔오라" 고교 마케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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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을 모셔오라" 고교 마케팅 열전

입력
2009.07.2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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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최모(49ㆍ여)씨는 지난 달 구청이 주최한 고교선택제 설명회에 다녀온 이후 중3 딸이 진학할 학교로 인근 H, Y여고 두 곳을 일찌감치 점찍었다. 각 학교가 마련한 홍보 부스에서 교육과정과 학력 증진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구태여 멀리 통학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거주 지역의 학력 수준이 낮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를 지원할까 고민했는데 고교마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특성화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2010학년도 서울 지역 고교 입시부터 학생이 학교를 골라 지원하는 고교 선택제 시행을 앞두고 고교들이 사활을 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C고 교장은 "서울 지역 고교들은 올 하반기 생존과 도태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절박함을 강조했다.

종로구에 있는 상명대부속여고는 일반고임에도 지난해 3월부터 등굣길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교사(校舍)가 높은 지대에 있다보니 "다리가 굵어진다", "땀이 많이 난다" 등 주변의 온갖 험담에 시달려 온 탓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주로 많이 지원하는 성북ㆍ서대문ㆍ은평 지역에 25인승 버스 11대를 운행하며, 아침마다 전교생(980명)의 절반 가량을 실어 날랐다.

결과는 대성공. 전년도에 50% 선에 불과했던 1지망 지원율은 지난해 100%를 너끈히 채웠다. 김철교 교장은 "학교 선택권 시행을 앞두고 학생ㆍ학부모들이 가장 중시하는 지원 기준이 접근 편의성"이라며 "성과가 좋아 올해는 버스 운행 규모를 두 배 늘렸다"고 말했다.

역시 학교가 고지대에 위치한 용산구 보성여고는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불리한 입지를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김원기 교감은 "선택제에 대비해 올 겨울방학중 재학생 8명을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사립학교로 연수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학생ㆍ학부모의 시선을 끌려면 독특한 마케팅이 단연 적격이다. 광진구 자양고는 '난독증(難讀症) 진단 시스템'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난독증은 문자 판독에 이상이 있는 병.

최경선 교사는 "한 병원 연구소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2학년 500명을 대상으로 검사해 보니 실제 20명 정도가 심한 난독 증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생들을 4개월간 꾸준히 치료한 결과 기말고사에서 대부분 놀랄 만큼 성적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우수 학생을 '입도선매'하기 위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강북구 영훈고는 지난해 교내에서 학교군 내 우수 중학생을 추천받아 수학, 과학, 영어, 논술 경시대회를 열었다. 과목별로 성적이 우수한 10명 정도를 시상하고 단체 표창도 했다.

김영기 교감은 "인근 학교가 자율고로 지정돼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일단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게 되니까 시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홍보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는 참가 인원을 늘려 9월에도 경시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뭐니뭐니 해도 학부모의 최대 관심사는 대학 입시다. 노원구 용화여고는 올해 18차례나 입시설명회를 마련했다. 앞으로도 자체적으로 3번, 2번의 외부 설명회가 계획돼 있다.

박흥원 교장은 "관내 중학교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학부모를 초청해 설명회를 가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여고와 문정고처럼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대비해 학생 교육활동에 대한 개인별 데이터베이스(스쿨 프로파일)를 만들어주는 학교도 있다.

내년에 문을 열 13개 자율고는 시설 투자와 장학금 확대 등 하드웨어 보강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이화여고, 배재고, 신일고, 중앙고는 최근 200~400명 규모의 기숙사 신축을 확정했다.

또 3년간 장학금으로만 10억이 넘는 돈을 내놓는 등(이화여고) 학생 유치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한 자율고 관계자는 "교육과정 특성화는 기본이고 '자율고'라는 이름 자체의 프리미엄이 있는 만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일반고와 확실한 격차를 벌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마케팅 시대'의 개막에 발맞춰 교육 당국의 측면 지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은 내달말 학교별 교육정보 및 홍보동영상이 탑재된 학교 홍보전용 홈페이지를 열고 9월부터는 지역교육청별로 합동 설명회를 개최해 학교들의 홍보활동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김영식 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장학사는 "일부 중학교는 지역 고교 교장과 진학 담당 교사를 불러 직접 설명회를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살아남기 위한 학교들의 움직임이 한층 분주해졌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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