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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나의 집을 떠나며' 현길언/ 희생·헌신·사랑으로 포장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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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나의 집을 떠나며' 현길언/ 희생·헌신·사랑으로 포장된 가족…

입력
2009.07.2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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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의 존재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 역사 공동체에 관심도 의미 있지만, 그 출발은 '자기'에 대한 정직한 관심이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관심은 가족과의 관계성에서부터 풀어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고향 제주에 아로새겨진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지식인의 시대적 책임, 이념의 허구성의 문제와 씨름해오며 '비판적 리얼리스트'로 불린 소설가 현길언(69)씨가 '가족'으로 귀환했다.

1993년 <배반의 끝> 이후 16년 만에 나온 현씨의 소설집 <나의 집을 떠나며> (문학과지성사 발행)는 1990년대 후반부터 "띄엄띄엄 써왔던" 가족에 관한 단편 4편과 중편 1편을 묶었다.

현씨는 '희생, 헌신, 사랑'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상 서로를 옥죄기 일쑤인 가족관계의 내면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그래서인지 수록작 대부분을 가족관계의 속꺼풀이 벗겨지는 중병이나 죽음의 상황으로 설정했다.

단편 '나의 집을 떠나며' 는 가족구성원 사이에 애(愛)와 증(憎)이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찍 상처한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 노릇을 홀로 감당하려는 딸을 통해서다.

아버지의 와이셔츠는 늘 때가 묻지 않게 걸어두고, 동생들의 도시락이며 학용품을 챙겨주는 일, 일가친척 대소사까지 소흘함이 없는 딸은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결혼마저 포기한다.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일까. 아버지의 재혼 기회에마저 번번히 제동을 거는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결국 파탄으로 끝난다.

딸은 말기암에 걸린 아버지의 입을 막아 숨지게 한다. 종적을 감추기전 딸이 남긴 "결국 나는 아버지를 억압한 폭군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 사랑이 아버지를 괴롭게 만들었더라도"라는 내용의 편지는 사랑과 억압의 경계를 명쾌하게 구분지을 수 없는 복잡한 가족관계의 진상을 보여준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을 양아들로 들이지만 끝내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와하는 목사 부부('벽'), 목사인 아들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해 죽음의 순간까지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우리 빗물이 되어 바다에서 만난다면') 등 미묘하고 까다로운 가족관계의 양상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현씨의 소설들을 지배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상대가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사랑과 이해가 오히려 상대에게는 증오와 불화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벽')이라는 구절은 '가족의 진정한 화해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다.

2005년 한양대 국문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뒤 계간 문예지 '본질과 현상'을 꾸리고 있는 현씨는 이 문예지에 이번 여름호부터 2007년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의 기독교 자원봉사자 납치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잔인한 도시' 연재를 시작했다.

"인질의 목숨을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본질을 외면하고, 한국 기독교계의 공격적 선교의 문제 등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렸던 당시 상황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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