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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문 닫히고 대출문 막히고… 한번 신불자는 '영원한 신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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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문 닫히고 대출문 막히고… 한번 신불자는 '영원한 신불자'

입력
2009.07.2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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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1999년 초 실직한 뒤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강모(35)씨는 아직도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2004년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5,200만원이던 빚을 3,000만원으로 탕감 받았다. 매달 30만원씩 꾸준히 갚아 빚이 1,500만원으로 줄어든 작년까지만 해도 신용회복의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 병원비를 대느라 상환이 4개월째 밀린 상태. 한 달만 더 연체하면 탕감 받은 2,200만원까지 다시 갚아야 한다. 규정상 3개월만 연체하면 개인워크아웃 자격이 상실돼 탕감액을 다 물어내야 하지만 강씨는 상환 의지가 높다는 점이 인정돼 5개월 연체 시로 완화됐었다. 그는 "신용불량자라 취업도 안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버텨왔는데, 지금은 눈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현재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217만여명으로 15세 이상 인구의 9%에 달한다.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1명꼴로 금융채무 불이행자인 셈이다.

강씨처럼 한 번 신용불량의 굴레에 빠지면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개인워크아웃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신청자 80여만명 가운데 실제 금융채무불이행의 딱지를 뗀 사람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물론 탕감 후 원리금을 8년간 나눠 갚도록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중도 탈락자가 많은 것에도 크게 기인한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30% 정도는 3개월 이상 연체시 개인워크아웃이 무효가 되는 규정 때문에 중도 탈락한다"고 말했다.

이는 개인워크아웃에 들어가더라도 빚을 갚고 자립을 하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신용조회 탓에 정상적인 취업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가 대출을 받아 창업을 하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쉽지 않다.

강원 춘천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47ㆍ여)씨는 2.5톤 트럭 할부금 700만원을 3개월 연체해 2004년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그 후 농협은 종이상자와 비닐 등 현물 대출을 끊어버렸고, 이 때문에 수확한 고추와 버섯을 포장할 종이상자가 없어 그냥 썩혀야 했다. 이씨는 "내가 농사를 지어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지 와서 보고, 지원 좀 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묵묵부답이었다"며 "재료를 사지 못해 올해는 버섯농사도 접었다"고 하소연 했다.

신용회복위는 금융채무 불이행자에게 취업을 알선하고 있지만, 이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1998년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자퇴한 뒤 카드 빚 200만원 때문에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된 장모(35)씨는 지난해 1월 신용회복위의 소개로 중소 전자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지만, 6월 말 퇴사할 때까지 17개월 동안 받은 돈은 300만원뿐이었다. 신용회복위가 일자리 알선만 했지 취업 이후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희망근로사업 역시 금융채무 불이행자에 대해서는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 "본인의 통장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급여 입금이 불가능하다"며 "전액 상품권으로 지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울 K구청에서 희망근로를 하고 있는 오모(64)씨는 "다른 사람 통장으로도 입금이 가능하다고 해서 일을 했는데, 재래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설령 개인워크아웃에 들어가더라도 신용회복위원회와 협정을 맺지 않은 일부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의 빚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3년 전 개인워크아웃에 들어간 박모(38)씨는 최근 생각지도 않았던 채무상환 독촉장을 받았다.

4년 전 갚지 못한 신용카드 이용대금 70만원에 연체이자를 포함, 280만원을 일시불로 갚으라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현재 진행중인 개인워크아웃 프로그램대로 상환을 완료해도 280만원을 갚지 못하면 금융채무 불이행자 딱지를 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법원의 개인회생, 개인파산 제도도 금융채무 불이행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법원에 신청해 절차를 밟아야 하는 두 제도의 경우 변호사 비용이 100만원에 달할 뿐 아니라, 이후 은행 대출 등 금융기관 이용이나 국가자격시험에도 응시 제한을 받는 등 신분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용회복 지원 대상을 늘리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가지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있지만 구제를 받는 사람은 전체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극히 일부에 머물고 있다"면서 "정부가 과감한 신용회복정책을 쓰지 않으면 이들의 수는 지속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가 개선된 만큼 이제는 구조조정으로 피해를 본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위해 공적 지출을 늘려야 할 때"라?강조했다. 양 교수는 또 경기 회복으로 이득을 본 은행들도 부실채권 정리기금과 이익잉여금 3조~4조원으로 금융채무 불이행자 구제를 위한 기금을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개인파산의 경우 채무 면책이 됐는데도 취업 불이익, 금융기관 이용 제한 등 불이익이 따르는 제도의 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법원이 고의적 부도 등 불법행위를 걸러내고 있기 때문에 일단 파산 절차를 거친 사람에게는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허정헌기자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마이크로크레디트 창업 지원 그나마…

정식 취업이나 금융권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신용불량자들에게 '마이크로크레딧'(무담보 소액 대출)을 통한 창업은 가장 현실적인 자립 방법으로 꼽힌다. 최근 정부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이 사업에 나섰는데 준비 소홀로 예산만 낭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등 민간기관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지원 대상은 신용 7~10등급 금융소외계층으로, 신불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회연대은행은 2003년 10명에게 2억3,000만원을 대출한 이후 대상을 늘려 올해 상반기에만 215명에게 47억2,850만원을 창업자금으로 빌려줬다. 현재까지 수혜자는 900명에 육박한다. 신나는조합도 2000년 이후 36명의 창업을 도왔다. 두 곳 모두 대출자들의 상환율이 평균 90% 안팎에 달해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도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눈을 돌렸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휴면예금 440억원을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보건복지가족부가 330억원, 서울시가 60억원을 지원키로 하는 등 1,000억원 가까운 돈이 몰리고 있다.

신불자를 비롯한 저소득계층 대상, 1인당 평균 대출액 2,000만원, 이자율 연 2% 가량, 상환기간 6년 안팎으로 사업 형태는 민간과 유사하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해 신불자들의 자립을 성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가장 큰 문제는 창업지원전문가(RMㆍRelationship Manager)의 부족이다. 창업 업종 추천은 물론, 창업 이후 모니터링과 조언을 해주는 RM의 활약에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비 규모로는 150명 가량이 필요하지만, 지난해 RM 양성교육 이수자는 70여명에 불과했다. 기존 민간 기관 수준의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점을 뒤늦게 인식한 듯 정부는 7, 8월 각각 20명씩 6개월 과정의 RM 교육을 실시한다.

정부 대출이 창업자금보다 회수 가능성이 높은 전세보증금 지원에 치우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기존 기관들이 포괄적인 '운영자금'으로 대출하는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한 민간 마이크로크레딧 기관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는 전세금을 대출받고, 민간 기관에서는 운영자금을 대출받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면서 "중복 대출을 받을 경우 매달 상환액이 90만~100만원에 달해 이를 갚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민간 기관들이 쌓은 노하우를 적극 이용할 것을 조언한다. 류만희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금 지원은 정부가 하고 마이크로크레딧 운영 경험과 성공 노하우를 갖춘 민간 기관들에게 RM 육성, 시스템 운영 등을 맡기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민ㆍ관 협력으로 시스템이 일원화 되면 중복 대출 문제도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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