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난 23일 서울 명동 신용회복위원회 6층 교육장에 개인워크아웃 신청 마지막 절차인 신용교육을 받으러 온 소위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70여명 사이에서 이런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화원을 운영하던 이모(48)씨는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작년 10월 장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닥치자 사업을 정리했다. 오토바이 택배 일로 근근이 생활비를 댔지만 사업하면서 은행과 캐피탈사에서 빌린 2,500만원은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막막했다.
결국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이씨는 “채무가 줄어도 밀리지 않고 갚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13년간 고등학생 대상 종합학원을 운영해온 최모(43)씨도 경제위기 여파로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300명에 달하던 수강생이 작년 말부터 급감하면서 임대료와 강사 월급을 대느라 카드사 등에서 빌린 돈이 벌써 3,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자신도 다른 학원의 강사로 뛰며 돈을 벌었지만 최근 수강생이 50명으로 줄면서 이자 상환을 포기했다.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겼는데 이번에는 앞이 안 보이네요.”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자도 갚지 못하는 팍팍한 삶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지표경기만 개선되고 있을 뿐, 서민생활은 안으로 곪고 있는 것이다.
26일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올들어 6월까지 개인워크아웃 상담건수는 34만5,151명으로 작년 상반기(16만4,707명)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연말이면 카드사태로 신용대란이 몰아쳤던 2004년(76만5,756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워크아웃이 받아들여진 신청자 수도 작년 상반기(3만4,538명)보다 1만6,000여명 늘어났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신청자가 급증하자 하루 한 차례 열던 신용교육을 지난달부터 하루 두 차례로 늘렸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7년째 상담을 맡고 있는 이지호 선임심사역은 “작년 하루 10여명이던 상담자가 올 2월 이후 30여명으로 늘었다”면서 “과거 저소득층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자영업자 등 중산층과 취업을 못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젊은 층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작년 초 대기업에서 명예 퇴직한 이모(55)씨도 웬만큼 살던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퇴직금과 은행 대출로 삼겹살 전문점을 창업했다가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고 1억2,500만원 채무 이자를 두 달째 연체하고 있다. 음식점 수입은 월 150만원도 채 안 돼, 이씨는 식당은 부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며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라는 낙인 때문에 취업이 어려워진 젊은이들의 삶은 더 처절하다. 올해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한 이모(26ㆍ여)씨는 취업 실패로 2,000여만원의 학자금 대출금을 갚지 못해 최근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신용불량 기록 때문에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는 지도교수의 말에 그는 결국 일반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하위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종현 진주산업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번 신용불량의 빈곤층으로 떨어진 중산층이나 젊은 층은 지금과 같은 경제 양극화 구조에서는 다시 회생하기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사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신용회복 지원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