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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한국기업의 성공 DNA] <2> 원전 르네상스 우리가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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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한국기업의 성공 DNA] <2> 원전 르네상스 우리가 연다

입력
2009.07.2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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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의 두산중공업 원자력 발전설비 생산공장. 높이가 족히 50m 이상 돼 보이는 초대형 공장 바닥에는 무게 500톤이 넘는 원자로(原子爐)가 즐비하다. 신월성 1, 2호기 등 국내 원전은 물론, 미국 세퀴야 원전, 중국 산먼과 하이양 원전 등 해외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핵심 설비들이 한창 제작되고 있다.

원자로는 자동차로 치면 엔진에 해당한다. 발전 연료인 우라늄이 원자로 안에서 핵 반응을 통해 고온의 열을 발생시키면, 이 열은 외부에 연결된 증기발생기, 증기를 회전력으로 바꾸는 터빈, 그리고 회전력을 전기로 변화시키는 발전기로 이어지면서 원자력 발전을 완성한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원전의 핵심 기자재를 전 세계 원전에 공급 중인 국내 유일의 업체다. 이탈리아 안살도, 스페인 엔사 등 경쟁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두산중공업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업체로 꼽힌다.

그 비결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것이다. 원전 시설은 높은 효용성에도 불구, 방사능 노출이라는 위험성 탓에 그간 일종의 '혐오 시설' 취급을 받았다. 미국에선 1979년 펜실베니아주 TMI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 건설이 중단됐다.

여기에다 86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불 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세계적으로 지난 30년 간은 원전의 암흑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에겐 이 기간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워밍 업' 시기였다. 이영동 원자력공장장은 "78년 가동을 시작한 고리 1호기를 건설할 때만 해도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으로부터 '땜질 수준'의 기술을 배웠을 뿐"이라며 30여년 전 두산중공업의 초보적인 기술 수준을 회상했다.

우리나라는 원전 암흑기에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전을 적극 건설했다. 이런 노력은 두산중공업에게 기술 축적의 기회를 제공했고, 우리나라에는 원전 20기를 무사고로 운전하는 세계 6위(발전설비 용량 기준)의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제공했다. 우리나라는 96년 한국형 표준 원전(KSNP)까지 개발해 현재 95% 수준의 기술 자립도를 이룬 상태.

두산중공업은 이를 발판으로 지난해 웨스팅하우스가 발주한 6기의 원자로를 수주했고, 올해엔 미국의 신규 원전인 'AP1000'(모델명) 주기기 공급도 맡았다. 원전 종주국에 핵심기기들을 역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장장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웨스팅하우스가 주요 설비의 생산을 두산중공업에 맡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며 "그 배경의 하나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터빈 축 등 핵심 소재를 빈틈 없이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주ㆍ단조 능력"이라고 소개했다.

원자로가 안전하다고는 해도, 방사능 누출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쇳덩어리 내부의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균열도 허락돼선 안 된다.

이를 위해 1,200도로 달궈진 500톤짜리 쇳덩어리를 초대형 프레스(대형 단조 기계)가 두드리고, 또 두드려 원자로의 부분품을 만들어낸다. 이는 다시 원자력 공장으로 옮겨져 약 3년 동안 가공, 용접, 품질검사 등을 거쳐 첨단 설비로 거듭난다.

이 공장장은 "세계적으로 원자로 등 핵심기기 소재를 자체 공급해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업체는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며 "무게 500톤이 넘는 쇳덩이지만, 매우 세밀한 가공능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공장에서는 내년 하반기 완공되는 신고리 3, 4호기에 들어갈 증기발생기에 전열관(증기에서 발생한 열을 전달하는 관)이 세밀하게 배치되도록 지름 5m 크기의 원 안에 무려 2만6,000개의 구멍을 뚫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두산중공업 원전 공장은 현재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150명의 인력이 주야간 교대근무는 물론이고 잔업, 특근까지 해야 할 정도로 바쁘다. '땜질 기술'로 시작한 두산중공업의 원전설비 제작 능력이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원전 종주국을 물리칠 정도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 두산重 박화규 상무/ "화석 에너지 대체할 확실한 기둥은 원자력"

"원자력 발전은 가장 실용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자산이다."

두산중공업에서 원전 설비의 설계를 담당하는 박화규(51) 상무는 원자력 발전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자신한다. 요즘 석유 등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로 조력과 풍력, 태양광 등이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라의 '에너지 기둥'이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간 전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 탓에 원전 설비를 많이 짓지 않았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이 현재 운영하는 100여기의 원전도 길게는 30년 이상 된 노후 설비들이다.

박 상무는 "원전 안전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데다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에너지로써 원자력이 가장 확실하다는 믿음이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고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녹색 에너지'로서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원전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석탄의 100분의 1, 석유의 80분의 1에 불과한 청정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20년까지 약 290기(연간 25기)의 신규 원전 수요가 예상된다. 통상 1기당 건설비가 3조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시장 규모는 1,000조원에 이른다.

원전의 핵심설비를 제작하는 두산중공업에겐 큰 기회다. 우리 정부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새로 만들어 원전비중을 59%까지 늘리기로 했다. 올해 신울진 1, 2호기를 시작으로 매 2년 단위로 신규 발주가 예상된다.

중국은 현재 9GW인 원전 설비용량을 2020년까지 50~60GW로 키운다는 계획이어서 연간 3~4기의 신규 원전 발주가 기대된다. 30년 만에 원전 건설을 재개한 미국도 2030년까지 약 30GW 규모의 신규 수요가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은 경제성 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나 프랑스 아레바보다 동일한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낮다. 신고리 원전 3, 4호기의 1KW당 생산비는 2,000달러 수준으로, 해외 업체(3,000달러 이상)의 3분의 2 정도다.

박 상무는 "웨스팅하우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이 여전히 일부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만, 설비 제작 기술은 두산중공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며 '청출어람'의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창원=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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